한 시인의 다소 격렬한 비유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헌법은 연이은 겁간으로 만신창이가 된 여성의 몸이다. 그 헌법이라는 여성에게 회상(回想)의 능력이 있다면, 오늘은 봉욕(逢辱)의 날들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1954년 11월29일 당시의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은 국회에서 사사오입(四捨五入)의 기괴한 논리를 적용해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불법적으로 통과시켰다. 이것이 흔히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불리는 제2차 헌법 개정이다.
그 해 5월20일의 총선거에서 원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자유당은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향한 법적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9월8일 국회에 제출했다. 뒷날 박정희도 중임 제한 규정을 바꾸는 이른바 삼선 개헌을 관철시켰고, 그것이 결국 유신체제라는 꼬마 파시즘 체제로 귀결된 것은 다 아는 바다.
자유당의 헌법 개정안은 11월27일 국회 표결에서 재적 의원 203명 가운데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를 얻었다. 다시 말해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의 찬성표, 곧 136표에서 1표가 부족했다. 자유당 소속의 국회부의장 최순주는 어쩔 수 없이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지도부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자유당은 비록 135가 203의 3분의 2(대략 135.33)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재적의원의 3분의 2는 그 소수점 이하를 사사오입해 135명이면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내 뒤, 이틀 후 부결 선포를 번복하고 가결을 선포했다.
사사오입 개헌은 절차상으로 정족수에 미달했다는 점에서 위헌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점에서도 위헌적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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