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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49) 이성복의 '바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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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49) 이성복의 '바다시'

입력
200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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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상처와 악몽 받아주는 어머니이성복(48)에게 바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의 풍경은 상처이며 악몽이었다. 처음 그 상처는 바다와의 만남으로 언제든지 신화 속에 편입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자궁같은 푸른물

처음 그렇게 바다로 갔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남해금산)

서정인의 소설 '산' 의 주인공인 '그 여자' 는 교감선생에게 더럽힘을 당하고도 빠져 나오지도 못했다. 쓸쓸히 산을 오른 그 치욕의 누이는 돌 속에 박힌다.

그리고 그 상처를 씻어주는 사랑에 여자는 울면서 해와 달이 끌어주는 대로 떠나가 설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 상처를 확인하고, 죽음의 얼굴을 보고 난 시인이 잠기는 푸른 바닷물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의 '바다'는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거품 입에 물고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네게 손을 흔드는 서러움이거나, 다 가보면 당신이 계실 곳이 남지 않을까 두려워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 치는 곳이었다.

낙천의 바다에 닿으려 하지만…

시인은 그 바다를 떠나고 싶었다. 죽음조차 무심할 수 있는, 고통의 조건들을 최소화하는 낙천의 바다에 묻히고 싶었다. 동해에 서서 시인은 그 바다에 닿으려 몸을 젖혔다.

공통의 축적인 에너지의 뇌관을 빼내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는 '너무도 낮아서 땅끝까지 고개를 젖혀도' 눈시울을 수평선에 맞출 수 없었다.

그는 그 바닷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바다를 만났다. 그는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대전 가는 차를 잘못 탔다. 부산으로 가기도 쑥스럽고 광주에 가기도 멋적어 변산반도로 가는 꼴이다" 는 표현을 썼다.

늙은 어머니를 마주 대한듯

그러나 바로 그 서해에서 그는 '남해 금산' 의 어머니(바다)와 아들(시인과 그의 시)을 만났다. 어머니는 늙었고, 가석방된 아들도 벌써 나이가 들어 가능성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달래고 아들은 속이 탄다.

발길 떨어지지 않은 나를 달래며 바다는 속이 탄다 검은 오지 항아리 속 자글자글 끓는 바다는 나를 달랜다 이러면 어쩌나, 낸들 어쩌나 오늘도 난 바다에게 짐만 되었다'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한가 옆은 하늘빛 옥빛 바다의 몸을 내 눈길이 쓰다듬는데 어떻게 내 몸에서 작은 물결이 더 작은 물결을 깨우는가'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 바다의 목구멍을 볼 수가 없구나. 박명의 해가 도장 찍는 헐어빠진 바다의 몸에 고름 같은 물결, 영원히 식어가는 바다의 몸을 조용히 다가오는 밤은 결 고운 안동포 수의를 입히는구나'

1998년 그는 채석강에 서서 '젖을 먹다 토악질도 않는 갓난아이처럼

' 시를 토해냈다.

물의 드나듬이 바다를 그에게 쑥 들어오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발을 벗지 않으면 건널수 없는 개펄이 있어서일까. "서해는 물결이 그 개펄을 드나들면서 더 깊은 곳에서 소멸하는 것들을 받아주고 있다.

서해는 절대자의 모습이 아니다. 폴 발레리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서해는 우리보다 더 사소하고 생멸적인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해바다에 서면 바다가 술래가 돼 나를 찾고, 내가 술래가 돼 바다를 찾는다고 했다.

바다를 보고 무엇을 떠올리기 보다 바다에 숨은 그림을 찾는 곳. 그 초겨울 변산반도의 검은 개펄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제는 다 잘려나가고 다리 한쪽만 남은 도살된 돼지처럼 작은 산이 흙(새만금 방조제)이 돼 바닷물을 막으며 목마른 개펄의 숨통을 죈다. 그러나 아직도 개펄은 살아있고,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인다'

서해는 피곤하고 지치고 자신 없고 가야 할 길에 너무 멀리 와 있으면서 안 갈수도 없고 지켜봐야 하는 시인으로서의 이성복과 같다. 비극적 어머니 앞에 선 못난 아들처럼 그는 그곳에서 토악질(시)을 다시 시작했다. "좀 좍좍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는데. 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토악질이 가장 고통스럽다."

8년 동안 그 고통스런 토악질로 그는 30여 편의 시를 써놓았다. 이제 그의 시에는 상처와 죽음에 '시간의 흐름' 이란 고통이 하나 더해졌다. 여성성을 붙잡고 있지만 더 이상 그것이 신화 속에 편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간직하고 있는 시들은 더욱 서럽다. 운명이다.

/변산반도=글 이대현기자

"임신시켜 놓고 차버릴수도 데리고 살 수도 없는 여자같은 … 詩"

이성복(李晟馥)의 시는 8년 전에 멈춰 섰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 속에 탄식했다.

"교수란 직업이 역시 편안한 거야" "대구에 있지 말고 서울에 있어야 했어" 라고. 이런 말들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 '일상의 안락함들' 이 시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시를 버리기 위해 그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시는 그에게 전부였다. '전부' 이기에 완벽해야 했고, 완벽한 시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그것을 버리게 하는 모순으로 다가왔다. 시는 보고싶지 않은 장면, 기억의 확인이었다. 막다른 골목의 확인이었다.

능지처참과 능욕의 마지막 얼굴까지 봐야하는 고통이었다. "사람이 사는데 이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통도 서양의 과잉 제스처라고 생각했다. "달리 살 수 있다. 시 아닌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난초'가 그려졌다. 이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차라리 시로부터 완전히 해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이렇게 비유했다. "시는 임신시켜 놓고 차버릴 수도 데리고 살 수도 없는 여자와 같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아무리 도망쳐도 마지막 시체가 떠오르듯, 시를 버리는 어떤 알리바이도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버렸지만 버린 게 아니었다. 깊은 바다에 던졌지만 그 시체(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시를 어렵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니, 시도 그를 어렵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 어려움을 털어버리려 그동안 온갖 처방을 내렸지만 시는 풀리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올 봄 그는 본의 아니게 불문과에서 문예창작과로 옮겼다. 이제는 연구실적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시를 써야 한다. 시가 그를 끌어내려 한다. "아직 모른다. 뻘(개흙)속에 그대로 파묻힐지, 휘청거리며 걸어 나올지. 막힌 길인지, 돌아가는 길인지."

시를 쓴 시간에도, 시를 버리고 산 시간에도 이성복은 시인이었다.

'바다' 1

서러움이 네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바다' 2

바다에 가면 파도는 너무 낮아서 팔을 뒤로 하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 바다에 가면 그 어느 바다라도 너무 낮아서 몸을 젖히고 땅끝까지 고개를 젖히고, 그래도 바다는 너무 낮아서 눈시울을 수평선에 맞출 수가 없다 언제나 바다는 낮고 나는 너무 높아서, 젖가슴 위로는 쓸데없는 것인 줄 알고 나직이 한숨 짖는다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및 동대학원 불문과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 으로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년) '남해금산' (1986년) 그 여름의 끝 (1990년)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년)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재 대구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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