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체급 그랜드슬램 위업...후배위해 은퇴"13년간 젊음을 바친 매트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한국레슬링의 거인 심권호가 은퇴한다.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그랜드슬램(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을 모두 제패하는 것)을 그레코로만형 48㎏급과 54㎏급, 두 체급에 걸쳐 두번씩이나 해낸 심권호가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더 이상 오를 무대가 없어서가 아니다. 심권호는 힘과 경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기량이 만개한다는 28세에, 어찌보면 서둘러 하산의 길을 택했다.
은퇴소식이 알려진 28일 체육계에는 벌써부터 한국레슬링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돌았다.너무 일찍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결정해야 하는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오직 자신만이 알뿐이다. 그는 가슴 한구석에 늘 큰 빚을 안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5년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후배 하태연(24ㆍ삼성생명)에 대한 빚이다.
자신이 48㎏급을 휘어잡을 때 하태연은 52㎏급 부동의 대표였다. 하지만 97년 국제레슬링연맹이 체급을 조정, 48㎏급을 폐지하자 둘은 라이벌 대결을 벌여야 했다.
결국 심권호가 최후의 승자로 남아 애틀랜타와 시드니 올림픽 2 연패(連覇)에 성공했다. 당시 대표선발 3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며 하태연을 이긴 심권호는 이때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자신이 정상에 오래 머물 수록 후배들의 좌절감은 더 깊어진다는 생각에서다. 실력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무슨 소리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스포츠맨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본다.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상대가 돼 주었던 하태연이 밝은 모습으로 "형, 내몫까지 싸워줘"라고 말했을 때 심권호는 쿠바의 나사로 리바스를 꺾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울움을 삼켰다.
시드니올림픽이 끝나고 자서전 '세계를 굴린 작은 청년'(디자인 소호 발간, 12월7일 올림픽파크텔서 출판기념회)을 쓰면서 심권호는 은퇴를 준비했다. 소속팀인 주택공사의 백창근(45)감독, 김태우(38)코치와 보름전 상담을 하고 은퇴결심을 밝혔다.
백 감독은 "어려운 결심을 했다"고 위로하고 심권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심권호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한뒤 지도자생활을 할 계획이다. 매달 소년소녀가장에게 성금을 보낼 만큼 남을 먼저 생각하는 심권호는 이래서 '작은 거인'이다.
이범구기자
lbk1216@hk.co.kr
■심권호 "진다는 생각 해본적 없어"
심권호에게는 좌절이 두 번 있었다. 레슬링 주니어국가대표 시절(한체대 1년) 자유형에서 그레코로만형으로 전환했을 때와 97년 체급조정으로 인해 대표에서 탈락했을 때이다.
자유형으로 세계주니어대회 은메달까지 따냈지만 한체대 감독의 권유로 그레코로만형으로 바꾼뒤 1년여의 공백끝에 93년 국가대표가 됐다.
48㎏급에서 올림픽을 제패한 심권호는 97년 체급폐지로 54㎏급으로 체급을 상향조정했으나 '힘의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대표생활을 접는다. 이듬해 하태연을 꺾고 다시 대표로 복귀했지만 99년 다시 하태연에게 패해 탈락하면서 은퇴우려가 제기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 1차전에서 하태연에게 또 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2, 3차전을 내리 이겨 태극마크를 달아 오뚝이임을 입증했다.
시드니올림픽 결승서 심권호가 보여준 플레이는 그의 천재성을 잘 입증해주었다. 팔, 다리가 긴 선수에 큰 기술을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감춰뒀던 장기인 목감아돌리기를 연속시도해 점수를 딴뒤 노련한 방어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선수촌에서 심권호는 야간자율훈련에 빠져본 적이 없을 만큼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져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힐 만큼 악착 같은 훈련으로 한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는 근성의 소유자다.
/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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