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전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은 부는가. 1960년대 조남철, 70년대 서봉수, 80년대 조훈현, 90년대 이창호 등 '당대의 1인자'만이 차지할 수 있었던 전통과 권위의 타이틀. 2인자 그룹엔 단 한 차례도 권좌를 양보하지 않았던 이 '보수적인'기전에도 과연 반란의 역풍은 일 것인가.내년 1월부터 10개월 간의 본선 대장정에 들어가는 제32기 SK엔크린배 명인전(한국일보 주최ㆍSK주식회사 후원)의 진용이 최종 확정됐다. 5단 이하 저단진 기사들이 참여하는 1차 예선과 고단진이 함께 겨루는 2차 예선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기사는 임선근 9단과 이성재ㆍ윤현석 6단, 목진석 5단 등 4명. ★표 참조
이들은 제31기 대회 준우승자인 조훈현 9단을 비롯, 유창혁ㆍ양재호 9단, 최명훈 7단 등 시드 배정자 4명과 더불어 한 명당 7차례씩 풀리그 방식으로 도전권 티켓 한 장을 따내기 위한 접전을 펼치게 된다.
제32기 명인전 예선전의 가장 큰 특징은 '신예 강호들의 대약진'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전통 4인방의 아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며 한국 바둑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차세대 주자들의 돌풍이 명인전에도 예외 없이 휘몰아쳤다.
당장 예선 통과자 4명 가운데 제25기 명인전 준우승자인 '검토의 제왕'임선근 9단을 제외한 3명이 신예다.
특히 이들 신예 기사 3인은 명인전 2회(제27기ㆍ30기) 준우승에 빛나는 '차세대 선두주자'최명훈 7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초특급 신예'들이어서 판도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예선을 통과한 신예 멤버 중 대표급은 '반상의 괴동' 목진석 5단. 31기 본선 리그에서 4승 3패로 양재호 9단과 동률을 이뤘으나 서열에서 밀려 아깝게 시드 확보에 실패한 그는 조훈현류의 발빠른 공격형 바둑으로 이번 기에서도 선배 기사들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속기전인 KBS 바둑왕전 결승(3번기)에도 올라 이창호 9단에게 도전장을 내민 그는 최근의 무서운 상승세로 보나, 탄탄한 바둑실력으로 보나 도전권에 가장 근접한 신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남철-조치훈 바둑 가문이 배출한 '명가의 후예'이성재 6단과 '신 4인방'윤현석 6단 역시 적극성과 체력, 공격력과 수읽기 능력을 고루 갖춘 다크 호스.
99년과 올해 연속으로 패왕전 도전기에 올라 아쉽게 조훈현 9단에게 무릎을 꿇은 이 6단은 이번 명인전 예선에선 특유의 전투바둑으로 '불패소년'이세돌 3단, '불사조' 서봉수 9단, 중국 출신 장주주(江鑄久) 9단 등 강자들을 연파하며 가볍게 본선 무대에 올랐다.
하찬석 8단과 강지성 3단, 윤혁 2단을 꺾고 올라온 윤현석은 명인전 본선엔 생애 처음 진출한 만큼 이번에야 말로 '신 4인방'의 꼬리표를 떼겠다며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이창호 식의 두터운 수비 바둑으로 일관했던 신예 기사들이 최근 적극성을 띤 공격형 바둑으로 탈바꿈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신예 주도의 전투형 기풍이 명인전의 높은 벽마저 무너뜨릴 수 있을지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이창호 명인의 10년 아성에 도전할 한 장의 티켓은 과연 누구의 손에 쥐어질 것인가. '세대교체'를 선언한 신예 전사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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