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성이 없으면 뇌물 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시중의 화제다.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최근 분양아파트 세금에 관한 법안 개정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택건설사업협회 회장으로부터 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 야당 중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법원은 이 의원이 2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개알선의 대가라기보다는 그를 평소 친형처럼 따르던 사람이 15대 총선 때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이 판결에 앞서 청구그룹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국회의원이 뇌물제공자가 돈을 주었다는 시간에 국내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잘 나가던 국회의원, 진급과 인사와 관련해 8,000만원을 받은 혐의의 전직 해병대사령관에게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졌다. 며칠 전에는 토지브로커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군수에게도 무죄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측은 검찰의 기소에 무리한 데가 있고, 피고인들이 기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는데다, 명백한 증거가 없어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형법정신을 엄정히 적용한 판결이다.
그러나 국민의 법 감정은 그렇지 않다. 도로교통법이나 폭력행위처벌법 등은 조그만 잘못도 어김없이 처벌하면서, 왜 돈 받은 것이 분명한 높은 사람들만 봐주느냐는 것이 시중 여론이다.
■대가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이권과 관련해 자신이 유리하게 해달라는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아도 거래 당사자들의 신분이 은연 중 그런 요구와 무언의 수락을 의심하게 한다.
형님 동생 하는 사이는 이권을 둘러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적 관계다. 돈 준 사람은 주택사업자 권익의 대변자였고, 그 정치인은 주택관련 법령의 개정에 영향력을 미칠 자리에 있었다. 정치자금이라 해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돈을 줄 업자가 있을까.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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