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도자기상인이 우리나라 도예가들이 복원한 고려청자를 자신이 복원한 것처럼 속여 국제전시회를 갖고 일본 외무대신의 표창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 도예상의 고려청자 국제사기극은 구석기유물 조작사건의 파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불거져 나와 일본 문화예술계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도예가 작품 사들여 국제사기극
경기 이천 민속도자기사업협동조합(이사장 이대영)은 27일 "도자기 중간상인 다니쥰세이(谷俊成ㆍ72)씨가 이천 도예가들의 고려청자 작품을 사들인 뒤, 자신의 낙관을 찍어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전시ㆍ판매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도쿄(東京)신문도 이날자 1면에 "고려청자 복원은 거짓말" 제목의 머리기사로 다니씨의 고려청자 사기극을 대서특필했다.
이천 도자기조합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다니씨는 72년초 해강(海剛) 유근형(柳根瀅ㆍ93년 작고)선생과 우현(又玄) 이기휴(李奇休ㆍ90년 작고) 선생 등이 원본에 가깝게 복원한 고려청자를 사들여 일본에 판매해 오다 두 도예가가 작고한 뒤 본격적으로 사기극을 벌여왔다.
▼10년간 유럽 등 다니며 전시 판매
다니씨의 국제사기극은 무려 10년동안 계속돼 왔다. 그는 1990년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다"고 발표, 이목을 끈 뒤 이듬해에는 일본 아키타(秋田) 현립미술관에서 사기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93년 유네스코 파리본부, 95년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도예전을 열었고, 밀라노에서는 최고의 영예인 '안브로지노 금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97년에는 일본 외무대신 표창과 은배를 수상한 데 이어 일본 미술작가명감(名鑑)에도 이천 도예가의 작품들이 버젓이 다니씨의 이름으로 소개됐다. 지난 10월에도 주오스트리아 일본대사관, 일본국제교류기금, 교토(京都)시의 후원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우리측 끈질긴 항의, 다니씨 사죄
다니씨의 사기행각은 그나 지난 4월4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문화면에 '고려청자 환상의 기법을 풀었다'라는 기고문을 내면서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글에서 "한국정부와 도예가들로부터 고려청자 복원 의뢰를 받고 80년대 중반에 청자 유약에 어떤 금속이 사용되는지를 규명했다"며 "30년전부터 고려청자복원에 매달려 지금까지 1,200종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일본 와세다대 교육학과 고바야시야스히로(小林保治)교수가 이천의 도예가 방철주(78)씨에게 문제의 기고문을 보여줬고, 방씨 등 이천 도예가들과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이 끈질기게 항의, 다니씨의 사죄를 받아냈다.
다니씨는 26일 오후 4시 이천의 도자기협동조합 사무실에서 고려청자 위조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그는 그러나 "유럽의 박물관에 이천자기를 기증한 것이지 판매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세계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미술도감에는 아직도 복원된 고려청자가 다니씨 명의로 돼 있다"며 "진실이 드러난 이상 작품의 제작자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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