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성원(31)씨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진짜가 되는 가짜'의 세계이다. 그의 두번째 소설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발행)에 실린 작품들은 "아직도 똘똘 뭉쳐 거짓을 믿는 도시"에서 "허위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분열증적인 모습을 그린다.첫 소설집 '이상 이상(李箱) 이상(理想)'(1996)에서 어떻게 진짜를 인식하느냐로 고민했던 그의 주인공들은 이번에는 가짜의 실상을 폭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좌절한다. "진실은 애당초 없거나, 있다 해도 우리가 절대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있다면 다만 "진실을 향한 허망한 갈망"이 있을 뿐이며 소설 쓰기도 그 한 가지 갈망일 따름이다.
'댈러웨이의 창'은 이러한 박씨의 주제를 집약해 보여주는 단편이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나의 집 2층에 한 사내가 세를 얻어 들어온다.
컴퓨터로 광고사진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그는 자신을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만들어내는 게 직업"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를 통해 댈러웨이라는 사진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의 사진은 사진 자체보다는 숟가락이나 유리병, 안경, 눈동자 등 사진 속의 사물에 비친 또 다른 모습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물화 같은 '식탁 위의 세상'이라는 사진은 겉으로는 한가로운 농가의 식탁을 찍은 것이지만, 그 위의 스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 군인이 농부를 총으로 쏴 죽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평화로운 식탁은 사실은 죽음의 만찬인 것이다.
나는 이런 댈러웨이의 작품세계에 매혹돼 스스로의 보잘 것 없는 사진작업에 절망을 느낀다. 댈러웨이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추적하던 나는 그러나 그가 2층에 세든 사내가 꾸며낸 가공의 인물이며, 사진은 사내가 컴퓨터 합성작업으로 조작한 것임을 알게 된다.
작가 박씨가 소설에서 꾸며낸 '댈러웨이 증후군'처럼, 가짜가 진짜가 되어 멋진 도시의 야경처럼 '감실거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빈틈없는 거대한 거짓에 중독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 가짜의 진실을 간파해내고 그것이 사기임을 드러내는 것이 역시 '가짜'인 소설의 힘이라는 것을 박씨의 작품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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