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의 시인 유하(37)씨가 이번에는 경마장으로 갔다. 90년대 초입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며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적 모습을 까발기고 조롱했던 시인. 그가 2000년의 끝자락에 낸 새 시집은 '천일馬(마)화'(문학과지성사 발행)이다.한탕 욕망의 집결지, 경마장은 시인에게 끝간 데를 모르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장소다. 천일야화는 끝을 내어서는 안되는 네버앤딩 스토리다. 끝남과 동시에 죽음이 기다린다.
유하씨의 '천일마화'는 우리 사회 욕망의 네버앤딩 스토리가 빚어낸 풍경들이다. 끝없이 죽음을 유예시키면서 경주마처럼 달려가야만 하는 욕망의 모습은 서글프다. 비루하고 추악하고 쓸쓸하다.
그 비루함은 이른바 '똥말(便馬ㆍ변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변마는 경주의 부진마(不振馬)를 가리킨다.
절대로 우승은 할 수 없으면서도 경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출전할 수밖에 없는 말, 달릴 수 있는 한은 결코 은퇴할 수도 없는 말, 폐기될 때는 식용(食用)으로 처리되는 말을 경마장에서는 똥말이라 부른다. 똥말에 비유해 시인은 '이 땅의 정치는 부진마 게임,/ 변마들의 운동회'('천일마화- 걸리버여행기'에서)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부진마는 어쩌다 우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999배당의 대박을 터뜨리기 때문에 마장을 찾는 이들의 꿈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진한 인간이 부진마 경주를 선호한다, 999배당이여/ 한순간에도 있다, 삶을 역전시킬 찬스가.'('천일마화-프루프록의 연가'에서)라고 '몽상의 대박'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유씨는 '가자, 헛됨의 끝까지'('노을' 에서)라고 말한다. "부디, 욕망이 나를 후회 없이 올인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욕망의 끝은 노름밑천을 다 날려버리는 올인, 죽음일 뿐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직 죽음만이, 이 저주받은 이야기꾼의 운명을/ 정지시켜줄 수 있다는 것을,/ 죽음은 그의 바람대로/ 그를, 말의 육신을 멈추게 해 주었다'('천일마화-명마 포경선'에서).
시인이 마사박물관에서 박제된 명마를 보고 쓴 이 시구 '저주받은 이야기꾼' 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가 말(馬)과 말(言)의 운명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의 운명은 '나쁜 피를 가진 말(言)'에 삶의 전부를 배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렬한 패러디, 거침없는 언어는 여전하지만 시인이 20대에 썼던 '압구정동' 시편의 신랄한 정조는 30대 후반이 된 지금에는 변마와 스스로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비애의 정조로 바뀌었다.
시집 후반부에는 자전거를 노래한 시들이 많다. 썩지 않는 방부제 같은 욕망의 용광로 경마장에서 그는 여유로운 산책의 길, 제 발로 굴리며 가는 자전거길의 꿈을 꾼다.
"질주와 산책, 발광과 고요, 들끓는 용광로의 욕망과 은륜의 비어있음의 경계를 걸어가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 말하는 듯하다.
그 칼날 위의 경계의식이 아름다운 시를 낳았다. '그대는 무진장한 물의 몸이면서/ 저렇듯 그대에 대한 목마름으로 몸부림을 치듯/ 나도 나를 끝없이 목말라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시도 벼랑 끝에 서지 않은 적이 없었다'('폭포' 전문).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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