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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박힌 페미니즘 거부… 성적 정체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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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박힌 페미니즘 거부… 성적 정체성 찾기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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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1990년대 많은 여성 작가들이 천착한 주제이자 숙제였다. 제도로서의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 그에 따른 기혼녀의 불륜이나 이혼은 당시 한국문학을 풍미한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이제 젊은 여성 작가들의 관심은 가부장적 구조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틀을 넘어서고 있다.■오후 3시 어디에도…

위기의 결혼생활 통해 자의식 탄구문제 다뤄

■여자의 계절

30대 여성 넷이 털어놓는 성에 관한 대담한 이야기

남자라는 상대성을 가진 '이혼', 사회적 가치판단이 개입된 '불륜'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성적 주체성의 적극적 실현 혹은 해방이라는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차현숙(37)씨의 소설집 '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문학과지성사 발행)와 고은주(33)씨의 장편 '여자의 계절'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문제작이라 할만 하다.

창작집 '나비, 봄을 만나다'와 장편 '블루 버터플라이'를 통해 여성의 자의식 탐구라는 문제를 끈질기게 추구해온 차씨의 새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작품 중 8편이 여성의 결혼생활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로 인한 파경, 혹은 여성의 정체성 혼란이 주제다. 주인공은 거개가 30대 중반의 중산층 여성이다.

'이브의 거울'은 고교 동창인 화자 '나'와 희주가 주인공이다. 나는 커리어우먼으로 활동적인 여자이고, 희주는 수동적인 성격이다. 나는 "삶의 긴장과 활력을 갖기 위한, 그저 모닝 커피 같은 것"으로 혼외정사를 즐기다 남편에게 들통나 구타당한 뒤 희주의 집에 와 있다.

희주는 거꾸로 결혼생활에 안주하다가, 첫사랑의 여자를 다시 만난 남편에게서 이혼당할 처지다.

희주는 주위의 강요로 재혼을 위한 선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결단에 의해 선 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다. "그녀나 나나 자신의 상황을 뛰어넘을 장대가 없다"('이브의 거울'에서)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결혼 위기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든 이 '장대'를 찾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고씨의 첫 장편 '여자의 계절'은 보다 직접적으로 30대 여성의 성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은 4명의 대학 동창. "서른 살이 넘은 여자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숨겨둔 거울을 꺼내보는 일과도 같다"는 작품 속 구절처럼 그들은 각자 다른 생을 살면서도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미류는 기혼녀이면서도 처음 만나는 외국 남자에게 스스로 몸을 열어버리는 능동적 쾌락의 추구자다. 그 반대편의 은해는 남편에게서 처녀성을 의심당하면서도 결혼을 완결된 삶의 목적지로 믿는 인물이다.

이들의 중간에 적당히 이성과의 교제를 즐기는 지원과 세하라는 인물들이 있다. 작가는 네 여자가 만나 털어놓는 성에 관한 고백적 담론을 통해 남녀간의 갖가지 성 묘사는 물론 레즈비언 섹스까지 대담한 성풍속을 펼쳐놓는다.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 쓰고 싶은 젊은 계절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평론가 하응백씨는 이들에 대해 '1980년대 학번의 보편적 감수성'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변혁에 대한 갈망이 여성의 성적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고씨도 "내 소설이 단순한 페미니즘의 아류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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