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탄핵안 처리 무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거론되던 여권의 당정개편론이 집권 후반기 인력 재배치를 명분으로 스스로 추진력을 갖추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러나 당정 개편의 그 강도나 방향을 놓고 여권내부에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내연양상이 빚어지고 있다.개편 시기도 정기국회 이후 연내에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있고 내년 2월로 넘어갈 것이란 설도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하기 위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출국(12월8일 예정) 직전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대표 교체 여부▼
올해 1월 창당 이후 민주당 내에서 당정쇄신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제기된 단골 메뉴로 서영훈(徐英勳) 대표의 상징성에 따른 적극적 '역할론'과 '대안 부재론'이 우위를 점하면서 교체론이 수그러들곤 했다.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장성민(張誠珉) 의원 등 소장파 사이에서는 '실세 대표론' 또는 '선출직 최고위원 대표론'이 제기된다. 호남인사 대표 기용이 일찌감치 배제된 상황에선 선출직 최고위원 중에서 김중권(金重權) 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고 당 밖에서는 총리를 지낸 이홍구(李弘九) 전 주미대사 영입설도 나온다.
다만 김 위원은 원외라는 것이 약점이고 이 전 대사의 경우는 창당과정에서 이미 검토가 끝난 사안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 대표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도 개편대상에 포함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청와대 쪽에서는 "당에서 당정개편론이 나올 때마다 대안도 없이 대표를 흔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당 3역 등 주요 당직 개편 여부▼
아무래도 당정개편론의 핵심은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 정균환(鄭均桓) 총무, 이해찬(李海瓚) 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의 교체 여부다.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 등이 주장하는 '전면적 대폭 개편론'의 범주에는 물론 당 3역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또는 선택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당의 안정적 기반을 흔들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부정론도 만만치가 않다. 다만 보다 설득력 있는 리더십을 요구하는 소장파와 당직에서 소외된 중진 사이에서는 "당직 개편은 이미 실기했으나 지금이라도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흥미로운 점은 3역교체가 당내 실세인 동교동계의 2선 후퇴론과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 후반기 동교동계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당내에 양론이 있고 동교동 내부에서도 서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당정개편론이 여권 내 파워게임으로 비치는 것도 이러한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개각 및 당 인사 입각 여부▼
개각 필요성에 있어서도 적극론과 소극론이 있다. 서 대표는 "진용을 바꾼 지 4~5개월밖에 안됐는데 다시 바꾼다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 쪽은 "새 장관이 업무를 익히는 데 3~6개월이 걸린다"며 잦은 개각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정개편 자체에 대해서도 "내년에나 보자"며 시기를 상당히 늦춰 잡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입각 희망자를 포함한 상당수 인사들이 "개혁 완수를 위해서는 당이 내각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차제에 청와대 비서진용도 물갈이를 해야 하며 정무장관직 부활 등으로 당정 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徐대표 '당정개편論' 곤혹
'당직 개편'에 대한 민주당 서영훈(徐英勳) 대표의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서 대표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바뀌기는 바뀌겠지"라고 말해 당직 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27일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론보도 내용이 민심이라면 바꿔야 하며 개편은 언제나 나까지 포함해 말하는 것이다"라고 언급, 대대적 개편에 대비해 이미 마음을 비웠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서 대표를 잘 아는 측근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당직개편 얘기만큼 서 대표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고 전제, "개편론 쪽에 기운 듯한 발언을 하면 대표가 파벌적 입장에서 당을 흔든다는 얘기가 나오고, 아니라고 하면 자리에 연연하는 것처럼 비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서 대표가 27일 "당직 개편에 관한 한 나에게는 권한이 없고 당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시기와 폭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직 개편에 관한 한 서 대표가 이중적인 입장에 있지만 개인의 거취에 관한 서 대표의 의중은 "민주당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쪽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서 대표는 물러갈 때를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서 대표는 이날 "아직은 내가 여기 필요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