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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마젤란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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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마젤란해협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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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 11월28일 포르투갈 출신의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남아메리카 남단과 푸에고제도 사이를 동(東)에서 서(西)로 통과해 태평양에 이르렀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이 해협은 뒷날 마젤란해협, 또는 파타고니아해협이라고 명명되었다.마젤란은 그 전 해인 1519년 8월10일 앤트워프 출신 상인의 경제적 지원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1세의 허락을 얻어서 선박 다섯 척에 승무원 270명을 싣고 스페인의 세빌랴를 떠나 역사상 최초의 지구 일주를 시작했다.

해협을 지나 다시 서진(西進)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마젤란은 그 바다가 그 당시의 항해기술로 3개월이 더 걸려야 가로지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비록 긴 항해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바다물결이 비교적 잔잔해 마젤란은 이 바다를 평화로운 바다, 곧 태평양이라고 명명했다.

마젤란은 불안에 떠는 선원들을 통솔해 계속 서쪽으로 가는 동안 좀처럼 섬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21년 3월 초에야 괌섬에 이르렀다.

3월16일에는 지금의 필리핀군도 레이테만의 즈르안섬에 도착해 세빌랴에서 데리고 온 수마트라 출신 노예의 통역으로 원주민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4월에는 세부섬의 군주와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스페인왕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게 했다. 그러나 마젤란은 그달 27일 섣불리 막탄섬을 공격했다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했다.

나머지 선원들이 세빌랴에 도착한 것은 1522년 9월8일. 생존자는 18명이었다. 비록 마젤란 자신은 세계 일주를 하지 못했지만, 그는 인류 최초의 지구 일주 항해의 지휘자였다.

마젤란해협은 1914년 파나마운하가 개통된 뒤에는 항로로서의 중요성을 잃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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