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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남미로 가는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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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남미로 가는것 아냐?"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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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떨고 있다. 환란(換亂)공포증 때문이다. "환란이 다시 오는 것 아닌가. 환란이 오면 어떻게 하나." 요즘 너무나 많이 듣는 말이다.경제부처 고위 공무원들만 "환란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이 같은 장담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공포심을 떨쳐내기 위해 내뱃는 헛기침으로 들린다.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은 이미 눈치를 채고 행동에 들어갔다. '덜 먹고, 덜 쓰기' 운동이라도 하는 듯 소비를 과감히 줄이고 있다.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내수경기의 급랭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알량하기 그지 없는 공무원들이 시킨 것도 아니다. 경험에서 체득했다.

환란과 한국전쟁(6.25사변). 생각하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사건이다. 6.25사변을 경험한 전전(戰前)세대에 있어 환란은 곧 제2의 6.25사변이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6.25사변이 다시 터질 수도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환란 망령이 한국을 엄습한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한국은 아직도 환란이 서식할 만한 토양으로 남아있다. 곰팡이 서식을 막으려면 마루를 닦고 습기를 제거하는 등 주변여건을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이 같은 환경개선이 아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중남미의 경험은 우리에게 여전히 큰 교훈이다. 적지 않은 경제전문가들이 "이러다가 한국이 중남미 국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방계기관인 국제문제조사연구소(RIIA런뮐┛姸┒떻玲П맑~ 전신)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던 지난해 4월 현재의 환란공포증을 예견이라도 하듯 의미심장한 책 한 권을 발간했다. '중남미 환란, 왜 반복되나'라는 단행본이다.

RIIA는 서두에 "이 책자의 내용은 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정치권, 정부당국, 노동계 등에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주기적으로 환란을 겪고 있다며 한국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중남미는 왜 환란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반드시 해야 할 개혁을 못했기 때문이다. 중남미 개혁의 현주소는 어떤가. 이 책은 ①정치개혁-불가능한 개혁 ②노동개혁-기피하는 개혁 ③금융개혁-미완의 개혁 ④가벌(家閥렷畸뮌~ 재벌과 같은 개념)개혁 -실행의지가 없는 개혁 ⑤재정개혁(공공개혁) -중도에 포기한 개혁 등으로 진단했다.

중남미 개혁에 대한 진단이 한국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한국국민 가운데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개혁은 화제거리가 되지도 못할 정도로 절망상태다. 경제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금융개혁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재벌개혁은 백년하청(百年下請)이다. 공공개혁를 얘기하면 국민들은 그냥 웃는다. 국민의 정부가 내세운 4대 경제개혁(금융런蓚湯공공럼六~)과 정치개혁에 대한 평가가 이런 수준이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6일 "한국은 IMF체제극복의 모범생으로 칭찬받았으나 지금은 성적이 나빠 퇴학당할 위기"라고 비아냥댔다.

중남미 경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개혁못한 경제는 언제든지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중남미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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