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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동물 & 동물과인간 / 섬진강 연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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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동물 & 동물과인간 / 섬진강 연어가 돌아왔다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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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과 섬진강 아이들이 요즘 강가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몇 십 년만에 섬진강에 연어가 돌아왔다니 그 반가움이 오죽하랴. 섬진강을 막았던 댐을 부순 것도아니고 섬진강 수질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버거운 반가움인가. 필경 물줄기를 잘못 찾은 길 잃은 연어들이리라.

사실인 즉슨 전라남도가 지난 1998년부터 3년 동안 무려 100만 마리의 치어를 방류했었다고 한다.

그 치어들에게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주지 않은 이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너무도 잘 알려진 연어들의 회귀본능과 지난 몇 십 년간 연어 씨가 말랐던 강임을 생각하면 우리가 놓아준 '섬진강 아이들'이 돌아온 게 거의 분명한 듯 싶다.

매일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지자체들은 한결같이 예산만 낭비하는 철부지 집단처럼 보였는데 이런 훌륭한 일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다 뿌듯해진다.

연어의 종에 따라 바다에서 사는 기간이 짧게는 1년에서 길면 5년씩이나 걸리는 걸 생각하면 온 나라가 당장 결과를 볼 수 있는 과시용 사업에만 눈이 새빨간 현실에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동물들은 과연 고향길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지난 몇 십 년간 세계 각지의 생물학자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을 수행했다.

철새들은 주로 늘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해와 달 그리고 별을 보며 방향을 잡는다. 고래나 비둘기 등은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를 향하여 기수를 잡는다.

뚜렷한 지형지물을 기억해 두었다가 길을 찾는 동물들도 있다. 우리도 "치과 골목으로 들어와 쭉 올라오다 보면 교회가 있는데." 하며 길안내를 한다.

냄새도 한 몫을 한다. 개미들이 페로몬으로 냄새길을 그린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들도 낯선 곳에 들면 냄새로 말뚝을 박느라 자주 전봇대 등에 오줌을 찔끔거린다.

비둘기도 아주 먼 거리가 아니면 냄새로 집을 찾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탈리아 비둘기들은 익숙한 스파게티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연어도 냄새로 고향을 찾는다. 실험적으로 눈을 가린 연어들은 별 어려움 없이 고향 강물을 찾는데 비해 코를 막은 연어들은 대부분 실패한다.

인위적으로 강물의 냄새를 바꾸면 돌아오던 연어들이 강어귀에서 웅성거릴 뿐 좀처럼 오르려하지 않는다.

연어들이 길을 잃어 섬진강으로 잘못 들어섰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은 워낙 시각과 청각이 발달한 동물이라 냄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고향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돌며 스스로 무얼 하는지 잘 관찰해 보라. 가슴 가득 고향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 무려 15년을 미국 동부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곳이 또 하나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연구 때문에 가끔 그곳에 들리면 우선 냄새부터 맡는다.

마치 솔잎을 참기름에 버무린 것 같은 냄새가 나면 나는 금방 향수에 젖는다. 퍽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냄새는 다름 아닌 스컹크 냄새다. 내가 미국땅을 밟은 첫날밤에 맡았던 바로 그 '낯선' 냄새일 뿐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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