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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립국어연구원장 공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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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립국어연구원장 공채 유감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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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립국어연구원장 공개모집 공고를 대하면서 몹시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국책기관의 장을 공개모집한다고 했으면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국립국어연구원장을 '응시자'중에서 시험으로 선발한다고 하니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바로잡는 막중한 과업의 총 지휘자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낭패감이 들었다.사실 우리나라 국책연구소나 국영기업체 장의 인사는 그간 의혹이 많았다. 선임과정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그냥 누가 임명되었다고 발표만 될 뿐이어서 우리 국민들은 발표를 보고 '우리나라에 인재가 그렇게도 없나'하고 한탄을 할 때가 더 많고 '모처럼 제대로 된 인사'라고 평할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후자의 경우에는 그가 '힘'을 별로 쓸 수 없으리라는 예측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국책연구기관의 장을 공개모집한다는 것은 인사의 투명ㆍ 공정성을 증진시킨다는 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선진국의 경우였다면 아주 합리적인 선임방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경영관리자같은 자리가 아니고 국어연구원장같이 명망과 권위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맡을 사람을 신문광고를 통해 공개모집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인격과 학식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자리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이런 풍토는 위선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고, 이런 의식은 빨리 바뀌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의 규범을 만들고 방향을 제시할 사람이 응시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관리들 앞에서 '면접 또는 실기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우리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문화관광부가 어떤 '실기'시험을 보일 계획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공개모집에 국립국어연구원장의 위상을 대폭 낮추려는 문화관광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제까지 문화관광부 산하의 많은 국책, 국영기관장들이 대개 원로학자나 예술인이었기 때문에 장관이 지시를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원로학자나 예술인이라고 해서 다 식견이 탁월하고 인격이 훌륭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화부의 행정편의주의라든가 전시행정을 견제하고 근본적인 문화정책을 강력히 건의할 수 있으려면 국책기관장들의 명망과 권위는 장관보다 높아야 한다.

매 국책연구기관의 장을 사계의 지도자급으로 구성된 추대위원회를 조직해서 전국적으로 추대를 받고 심도있는 심사작업을 거쳐서 인선을 하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 역부족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고에서 밝힌 대로 우리나라의 '어문정책의 최고 연구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의 장을 시험으로 선발해서야 되겠는가.

남북한간의 언어적 간극에 대한 언어정책 같은 미묘한 사안이 걸려있고 나날이 병들고 왜곡되어가는 우리 국어를 치유하고 회생시켜야하는 이 시점에서 정부의 국어정책은 너무도 중요하다.

뇌물이 '떡값'이니 '손실보전금'이니 하는 말로 교묘히 호도되고, '제 부인' '제 성함' '저희 댁'같은 극도로 무식한 말을 박사들도 거리낌없이 쓰고, 그냥 단어를 늘어놓으면 문장이 된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많고, 젊은 주부들이 윗어른에게까지 자기 남편이 이러셨고 저러셨다고 하고, 방송은 말의 초법적 자유의 실험장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국어연구원장의 위상을 낮추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리고 정부는 모든 국책, 국영기관의 장에 가장 명망있고 유능한 사람이 발탁될 수 있도록 선임의 원칙과 과정을 확고히 정하고 시행해서 나라의 인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인사가 바르게 되어야 실력사회가 될 수 있다.

서지문ㆍ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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