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권인수 시작"…고어 "연방대법 판결따라 뒤집기가능"미국의 제 43대 대통령 자리를 놓고 플로리다 대혈투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마침내 '당선선언'과 '결과불복'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일단은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한 부시측이 주도권을 잡고 밀어 붙이고 있으나 고어측은 이를 법적투쟁을 통해 뒤집겠다며 결사항전을 벌이는 상황이 됐다.
부시 후보가 26일 캐서린 해리스 주 국무장관이 부시 승리를 선언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당선 선언과 함께 정권인수작업을 시작하겠다고 성명을 낸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대통령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던 부시측으로서는 여론몰이를 위한 당연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는 즉시 딕 체니를 정권인수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대세를 굳히면서 고어 후보에게 패배를 인정하라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인 트렌트 로트는 이러한 부시측 시도에 곧바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부시 승리 발표 직후 "고어 후보에게는 안타깝지만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다른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위엄과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후보측은 또 12월 1일로 예정된 연방 대법원 심리에서 승리해 법적으로도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는 전략이며 만약 12월 12일까지 선거인단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공화당이 장악한 플로리다 주의회와 연방의회까지 동원할 태세이다.
이에 반해 수세에 몰린 고어측은 부시가 잠정적인 승자가 됐다는 부담 때문에 힘든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고어 후보측이 기댈 데는 법정투쟁을 통해 시간을 벌고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 밖에 없다.
27일 수작업 재검표 결과가 포함되지 않은 마이애미-데이드 등 3개 카운티의 지방 순회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정 전선을 확대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만약 지방 순회법원에서 고어 후보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주 대법원까지 소송이 올라가 승소한다면 고어 후보는 또 다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연방 대법원이 고어 후보의 손을 들어준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도 있다.
고어 후보가 26일 뉴욕 타임스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시측에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자신도 어떤 결정이 나오든 승복하겠다면서 그때까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한 발언에서도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고어의 고민은 과연 민주당측이 2002년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압력을 넣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줄 것인가 여부이다. 때문에 톰 카시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는 부시 후보측이 여론이 선거전을 끝내도록 결정하고 민주당이 점차 흔들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부시 후보측의 앞길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부시 후보측은 연방 대법원에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최종 집계에 반영하라는 주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파기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어 후보에게 시간을 벌어주면서 정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본의 아닌' 효과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부시가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당선을 선언한 것 역시 자기모순이라는 고어 후보측의 공격에 논리적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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