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하면 복사기도 변해야죠"가수가 노래만 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노래는 물론이고 외모와 춤, 성대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 '드림 팀'에 뽑히려면 운동도 잘해야 하는 '버전-업' 시대다.
이는 시장(Market)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기 때문이다. 복사기도 마찬가지다. 이젠 동네 문방구에서 시너(thlnner) 냄새를 풍기는 조악한 복사기는 디지털 시대의 초등 학생들로부터도 외면 당한다.
한국후지제록스㈜의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ㆍ58)회장은 "복사기도 이젠 다기능 디지털 복합기가 아니면 안 된다. 돌 한 개로 새 5마리를 모두 잡기를 바라는 게 소비자들의 요구이다"고 말한다. 그는 나아가 "복사기는 바로 경제"라고 강조한다.
1974년 국내기업인 동화산업과 일본의 후지(富士) 제록스가 50대 50으로 공동 투자해 설립한 한국제록스는 'IMF'를 넘기면서 후지가 동화의 주식을 전량 인수, 98년 3월 한국후지제록스㈜로 새로 태어났다.
당시 일본 본사로부터 '리스트럭처링'이라는 책무를 부여 받고 국내에 들어온 다카스기 회장은 회사 구석구석에 드리워진 패배주의와 비능률적 운영체계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처음 부임할 때 본사 인사방침이 '당신의 파견기간은 한국후지제록스의 리스트럭처링이 완전히 끝날 때'라는 것이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술회하는 그는 재무통 답게 우선 산더미 같은 회사의 재무ㆍ경영 관련 자료에 달려들어 한국제록스가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을 꼼꼼히 분석했다.
시장점유율이 국내시장에서 2번째를 차지할 만큼 매출규모는 작지 않았다. 그러나 AS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대응체계가 없었다. 더 한심한 건 금리가 20~30%를 웃돌고 있는데도 부채는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물에 젖은 담요'라도 몸에 둘러야 했을 정도로 입장이 다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개선을 위해 영업 수익률(ROS) 보다 매출 성장률에만 급급해온 경영환경과 'AS영업은 돈 안 되는 장사'라는 의식부터 뜯어 고치기로 했다.
경쟁사들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품질, 더 나은 서비스,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개별 상담시스템 등 차별화 전략도 서둘러 마련했다. 보통 구조조정의 1순위 과제로 생각하는 인력감축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의 액션플랜은 영업 전선을 새로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직접 판매망(DS)의 설치가 바로 그것.
대학 졸업 이상 고학력자들을 대거 판매인력으로 돌려 교육을 통해 세일즈 '사무라이'로 무장시켰다. 다카스기 회장은 '다큐먼트 솔루션(Document Solution)'으로 이 들을 교육했다.
'다큐먼트 솔루션'이란 문서정보를 작성, 전달, 확산하는데 필요한 모든 해결책을 제공하는 종합문서정보처리작업. 최근의 복사기는 단순 복사기능 외에 팩스, 스캐너, 프린터 등 멀티기능을 갖추는 등 발전과 진화(進化)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카스기 회장은 "복사기는 '보이지 않는 생산성' 향상에 중요한 요소"라며 "종이와 결부된 매체라는 점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사기야 말로 오프라인 기업이 디지털 시대로 발 돋음 하기위한 필수 사무기기"라고 설명한다. 싼 것이 반드시 좋은 복사기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국후지제록스㈜의 지난해 총 매출규모는 1,829억원, 수출은 98년보다 무려 91.9%가 늘어난 2,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주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로부터 '외국인 투자 기업상' 제5회 수상기업으로 선정됐다. 다카스기 회장의 강도 높은 리스트럭처링의 결과일 것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직원과 잘 어울리느 '삼겹살 회장'
직원과 잘 어울리는 '참새구이 회장'
● 사시 '강하고 즐겁고 정다운 회사' 가 매우 독특한 데.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주주에게 혜택을 주는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직원들이 자신이 맡은 일에 만족해야 신바람이 나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또 사회에 조금이나마 공헌할 때 비로소 소비자들이 정답게 느낄만큼 친근한 이미지가 남게 되는 거죠"
● 남들이 보는 회장님의 이미지와 사내에서의 별명은.
"제가 키가 작고 다소 저돌적이며 강인한 느낌을 줘서인지 박 대통령과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하지만 사내에선 직원들과 삼겹살 등 구이집에서 자주 소주를 마시며 어울려서 인지 '야끼도리 가이조 (참새구이 회장)'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한국말 공부는 하십니까.
"98년 초 1개월 가량 개인지도를 받은 것이 공식적으론 전부입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습관적으로 배우는 공부가 기억에 더 남는 것 같아요."
● 주량과 노래 실력은.
"폭탄주는 한 잔 정도, 가라오케는 기본으로 나훈아의 '사랑', 노사연의 '만남',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정도를 부릅니다.
● 가장 좋아하는 한국요리는.
"꼬리곰탕. 두 달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는 집사람(사무실 책상 좌측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이 감기에 걸렸을 때 직접 곰탕을 끓여 준 적이 있죠. 제 요리솜씨는 집사람이 감탄할 정도입니다. (웃음) 칼국수도 잘 만들죠."
● 언제쯤 일본으로 돌아가실 예정입니까.
"저희 회사의 정년퇴직은 61세 입니다. 정년 때까지 한국에 있을 생각입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부임기간이 '리스트럭처링을 마칠 때까지' 였는데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한국후지제록스
한국후지제록스㈜는 1974년 설립된 합작법인 한국제록스를 모체로 디지털 복사기와 팩시밀리 등 사무기기를 제조, 수출하고 있는 100% 일본 투자 법인이다.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등 아시아 9개 국가에 퍼져있는 후지제록스 계열사중 지난해 가장 높은 영업수익률을 올렸다. 투자금액은 6,493만2,000달러로 인천과 경기 부평, 대전에 각각 공장이 있다.
종업원 은 총 1,095명으로 판매망은 직판 사업부 10개 부서와 전국 390개 대리점 체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3월 서울 강남 선릉역 주변에 소비자들이 직접 방문, 각종 사무기기에 대한 시연 및 상담 을 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쇼 룸 '다큐멘트 센터'를 개설했다.
인터넷 웹 주소 (http://www.fujixero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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