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한국인들에게 머나먼 도시다. 그 곳은 무엇보다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비롯한 고대 유적들이 사람들을 매혹하는 관광의 도시다. 그러나 지난 세기 중엽 이 도시에서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 선언이 나왔다.제2차 세계 대전의 판세가 연합국 쪽에 유리하게 굳어져 가고 있던 1943년 11월27일 연합국의 세 수뇌는 이 도시에서 이른바 카이로 선언을 채택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그 해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대일전(對日戰)에서의 상호 협력과 일본의 영토 문제에 대한 연합국의 기본 방침을 결정했다.
이들은 이 방침을 27일 공동 코뮤니케 형식으로 채택했는데, 이것이 카이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연합국이 일본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 방침을 처음으로 천명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 주요 내용은 미국ㆍ영국ㆍ중국 세 나라가 긴밀히 협력해서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응징할 것이지만 세 나라 모두 영토 확장의 의도는 없다는 것, 제1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의 여러 섬을 비롯해 일본이 약취(略取)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 세력을 구축(驅逐)하는 한편 만주ㆍ대만ㆍ펑후제도(澎湖諸島)를 중국에 반환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 선언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국에 관한 특별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현재 한국민이 노예 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 국가로 만들기로 결의한다"고 명시해, 한일합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했다.
이 선언의 내용은 45년 포츠담 선언에서 다시 확인됐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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