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교착상태가 언제, 어떻게 풀릴 것 인지가 세계적 관심거리다. 외부세계는 당초 오만한 초강대국이 어이없는 허점을 노출한 것을 비웃거나 느긋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러나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자 오히려 조바심을 내고 있다.평소 미국에 비판적인 프랑스 좌파 신문 리베라시옹은 고장 난 우주선이 궤도를 이탈, 블랙 홀로 다가갈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씨름판의 지루한 샅바 싸움에 구경꾼이 지레 지치고 편치 않은 형국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속전속결보다 엄정하게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러나 그런 인내심도 마냥 지속되진 않으리란 우려다.
실제로 이미 자조(自嘲)섞인 해법들이 나오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잘났으니 격주로 백악관에서 일하게 하자거나, 반대로 둘 다 마땅찮으니 클린턴에게 4년 더 맡기자는 제안이다. 선거를 다시 하자는 주장과 함께, 권총 결투나 퀴즈 대결이 제격이란 의견도 있다. 불만과 염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옛 종주국 영국에서는 찰스 왕세자에게 통치를 위임하라는 제안이 나왔다.모반한 식민지를 향한 냉소적 충고인 셈이다.
또 대중지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사설에서 고어 후보가 대통령을 양보하는 대가로 민주당에 법무장관과 대법관 선택권을 주라는, 언뜻 그럴 듯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이 신문 사주(社主)가 '해괴한 발상'을 꾸짖는 편지를 보내고, 편집자는 또 이를 실명과 함께 게재해 전혀 다른 차원에서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미국 대통령 선출과정이 웃음거리가 됐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보조개 표'와 '기표 구멍에 붙은 종이 밥'등의 묘한 개념을 놓고 마냥 다투고 있다.
이렇게 가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권위가 크게 훼손될 것이란 분석을 흘려 듣기 어렵다. 행여 실추된 권위를 되찾기 위해 '강한 미국'을 들고 나와,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서둘러 해법을 찾아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스개가 아니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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