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관련 논쟁에서 주류 역사학계가 칼을 뽑았다. 송호정 교원대 교수가 최근 나온 '역사비평' 겨울호에서 재야 사학계의 '거대 강국 고조선론'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담은 글을 발표했다.송 교수는 1998년 고조선과 관련해 국내에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다. 도마에 오른 것은 KBS가 10월 7일 방영한 역사스페셜 '비밀의 왕국_고조선편'이다.
그동안 고조선 부분은 역사학의 카오스 같았다. 고대가 정확한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민족주의사관과 식민사관의 날카로운 대립, 역사적 상상력, 신비주의, 거기다 종교적 색채가 덧붙여지면서 진흙밭 같은 양상을 빚었다.
재야 사학자는 주류 사학계가 거대한 비밀을 은폐한 식민사관의 역사가라고 백안시했고, 주류 학자들에게는 재야학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화는 성립되지 않았다. 여기다 단군상 건립 문제로 종교간 설전이 보태지면서 학계의 차분한 논쟁이 뿌리 내릴 틈이 없었다.
재야 사학계의 주장이 정통 역사교양프로를 자처하는 KBS의 '역사스페셜'에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자 주류에서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 같다.
'비밀의 왕국 고조선'편은 비파형동검 출토지역을 근거로, 고조선의 영역을 비파형 동검이 집중적으로 나온 라요시(遼西)지방의 차오양(朝陽)시 일대를 중심지로해서 내몽고에서 만주, 한반도 남쪽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으로 잡고 있다.
강력한 고대국가에 반드시 필요한 거대 도성으로 기원전 2,000년전의 유적인 랴오시지역의 다디앤지(大甸子) 유적을 지목했고, 관료체제로 8조금법을 들었다. 송 교수는 이러한 내용이 고고학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비파형 동검이 중국 동북지역의 특징적인 검이지만, "고고학 자료의 분포권이 한 주민집단의 생활권과 직결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인데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곳을 무조건 고조선 영역이라고 선을 긋다 보니 청동기 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가 아니던 헤이룽장성(黑龍江省)지역까지 고조선에 포함시켰고, 이 논리대로라면 비파형 동검이 나오는 일본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또 기원전 7~8세기 차오양시 일대를 중심으로 한 요서지역 주민집단으로, 학계에서는 고조선과 관계없이 산융(山戎)족인가 동호(東胡)족인가로 논쟁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고조선 도성으로 지목한 초기 청동기시대의 다디앤지 유적은 라요시 지역에 근거한 여러 토착 군소집단의 제사 및 생활유적으로 고조선과 무관하며, 고조선의 중심이라고 했던 차오양시 청동기문화와의 유사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8조금법에 대한 노태돈 서울대 교수의 설명은 기원전 2세기의 상황을 말한 것인데, 이것을 기원전 2000년 이래의 단군조선의 국가체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 고고학 자료를 편의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짜집기를 하게 된다"며 "나라가 힘들 때마다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관심이 주기적으로 커져 왔지만, 환상적 민족주의가 역사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이런 주장에 대해 차근차근 대응해 가겠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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