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ㆍ4분기 경제성장률 9.2%는 1ㆍ4분기 12.7%에는 미치지 못하나 정책당국의 하반기 예상성장률 7~8%를 현저히 능가하는 매우 높은 성장률이다. 우리 경제는 적어도 3ㆍ4분기까지는 지난해 2ㆍ4분기 이래의 고율성장세를 그대로 유지해온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고율성장의 이면에는 경제구조상의 큰 변화로 인해 경제적 불안이 누적되고 있고, 이것이 구조개혁의 충격 및 사회ㆍ경제적 불안과 결합되면서 앞으로 경제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결국 9%를 능가하는 고율성장 경제실적이 발표되는 가운데서도 경제 주체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급격히 냉각되는 이중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는 올해 1ㆍ4분기를 기점으로 내수와 외수(수출)의 성장기여율이 내수주도로부터 수출주도로 역전됨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에 육박했던 고율성장 과정에서 내수와 수출의 기여율은 대략 60%대 40%였다. 그것이 올 2ㆍ4분기에 35% 대 65%로 역전된 후 3ㆍ4분기에 와서 더욱 굳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증가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수의존형 고율성장은 곧 내수의 급격한 침체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수의 침체는 언제나 그랬듯이 민간 소비지출과 기업설비투자의 증가율 둔화로 다시 집약된다.
올 1ㆍ4분기만 하더라도 11%에 달했던 소비지출의 증가율은 5%대로 급락했고 1ㆍ4분기 64%의 사상최고 설비투자 증가율은 그의 절반인 32%로 크게 낮아졌다. 이런 내수의 위축세는 4ㆍ4분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
따라서 내수의존 업종은 부진을 면치 못한 반면 수출의존 업종은 상대적 호황을 누려왔다.
3ㆍ4분기중 정보통신기기 분야는 53%의 고율성장을 기록했지만 여타 제조업은 7% 정도의 성장에 그쳤고 특히 경공업 부문의 성장률은 4%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금융ㆍ보험을 위시한 각종 서비스 부문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겨우 면했을 뿐이다.
내수는 급격히 위축된 채 정보통신기기 부문만의 수출에 의해 주도된 3ㆍ4분기의 고율성장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그만큼 크게 증대시킨 것이다.
정보통신기기 분야는 기술혁신과 그에 따른 신제품 출현의 속도가 빨라 '제품 수명 사이클'이 여타 업종에 비해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업종에 대한 의존 정도에 비례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성도 증대된다.
더구나 지난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반도체 가격 하락이었는데 4ㆍ4분기 들어 다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따라서 3ㆍ4분기의 고율성장 실적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중인 4ㆍ4분기의 경제상황은 현저히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책당국은 금년도 하반기 예상 성장률을 7~8%로 잡고 있다. 이러한 성장률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4ㆍ4분기의 성장률이 6%대에 불과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실상 현재의 불경기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정책당국은 내년도 성장률을 5~6%로 예상하고 있고 관민 각종 연구기관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이로써 내년 중의 심각한 불경기가 또한 예고되어있다.
이와 같은 성장률 둔화와 불경기는 따지고 보면 과거 1년 이상 지속되어온 내부의존형 고율성장이라는 '거품경제'의 산물이다. 경상수지를 방어하고 구조조정을 이룩하기 위해 거품제거가 불가피해진 다급한 상황하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신경제' 운운하며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한 것에 대한 값비싼 대가인 셈이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우리 경제의 냄비적 속성과 그에 따른 경제의 추락 가능성이다. 내수의 지나친 침체 예방과 수출경쟁력 확보에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박진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