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법정공방을 마무리 지어 줄 것으로 기대됐던 21일의 플로리다주 대법원 판결이 민주ㆍ공화 양당의 선거전을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측은 수작업 재검표를 수용하라는 주 대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당파적인 것" 이라고 연일 격한 성명을 토해냈고,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측은 "연방 대법원 판사까지 그렇게 매도할 수 있을 지 두고 보겠다" 는 비아냥을 서슴지 않았다.
법리논쟁과 관계없이 "갈 데까지 가보자" 는 감정대응이 확산되면서 2000년 미 대선은 법정조차도 양 진영을 제어하지 못하는 추악한 정쟁(政爭)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부시측이 22일 연방대법원에 제기한 상고 이유는 크게 세가지. 선거기간 중 자의적으로 주법을 바꿔놓았다는 것과 선거행정에 대한 입법부의 전권을 사법부가 월권했다는 것, 그리고 헌법이 정한 평등권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청원서에서 "연방 대법원마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정통성이 현저히 훼손되고 헌정위기를 초래할 것" 이라고 밝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위협성 발언도 내비쳤다. 뉴욕 타임스가 이날 '정치적 아마겟돈(선과 악의 대결장)' 이라고 신랄히 비난한 양측의 혈투는 공화당 의원들이 부시 후보측 설전에 가세하면서 적나라하게 전개됐다.
리처드 아미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주 대법원의 판결 후 "어떤 것이든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고 의회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고, 톰 딜레이 부총무는 주 대법원 판결을 "주제넘은 사법권의 남용" "공정한 선거를 위해 고안된 선거법을 깔아뭉갠 처사" 라며 격분했다.
오린 해치 공화당(유타) 상원 법사위원장은 "고어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엄청난 헌정실수" 라고 비난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주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 집계 마감시한으로 판결한 26일 오후 5시 이후의 상황. 초미의 쟁점으로 부상한 딤플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불만을 품은 한 쪽이 격렬히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끝없는 소송사태가 이어져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선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를 의식, 지난 주말 플로리다주 하원의 토머스 피니(공화) 의장은 선거인단 인선 마감일인 12월 12일까지 결말이 나지 않을 경우 주 의회가 25명의 선거인단을 임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시측 참관인단 대표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도 이날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 의회를 통해 '비상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혀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 쟁취를 위해서는 주 의회까지 동원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만약 주 의회에 의해 선거인단이 결정되고 민주당측이 이에 반발, 내년 1월 5일 새로 구성되는 의회에서 선거인단 개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미국식 민주주의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
부시측은 이날 플로리다주 우편소인이 찍히지 않아 무효 처리된 13개 카운티의 해외부재자투표에 대해 주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고어측 역시 수작업 재검표를 중단키로 한 마이애미_데이드의 결정에 대한 이의소송을 주 고등법원에 제기한 뒤 기각되자 다시 주 대법원에 상고했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상처뿐인 대통령이 등장할 것만은 분명해지고 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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