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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괴롭혔던 인류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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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괴롭혔던 인류의 편견

입력
2000.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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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몸의 역사 / 클로드 고바르 외 지음 / 장석훈 옮김흔히 문둥병이라 부르는 한센병은 유대·기독교에서는 질병이 아닌, 일종의 죄에 대한 대가로 여겨졌다.

성경에서 모세를 거역한 그의 누이 미리암과 도둑에다 거짓말쟁이인 모세의 하인 기에지가 모두 이 병에 걸린 것이 대표적이다.

복음서에서 예수에게 다가온 한센병 환자들이 '치유'가 아니라 '죄의 사함'을 요청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센병은 죄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다. 유전되는 병도 아니었다. 결핵균의 일종인 미코박테리움이라는 병원균에 의해 전염되는, 수많은 전염병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인류의 고질적인 '오해'와 '편견'에 의해 환자들은 얼마나 이중으로 괴로워해야 했을까?

'고통 받는 몸의 역사'(지호 발행)는 인류를 괴롭혀온 여러 질병들에 대한 쓸 데 없는 오해와 편견을 용기 있게 밝혀낸 책이다.

클로드 고바르 파리 제1대학 중세사 교수 등 프랑스의 역사학자 22명이 한센병을 비롯해 페스트, 티푸스, 암, 결핵 등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질병의 기원에서부터 치료법, 방역법 등을 역사적으로 기술했다. 그 역사는 질병 앞에서 고통스럽고 절박했으되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인류의 어리석음과 편견의 역사이다.

저자들은 먼저 페스트를 유럽 전역에 퍼뜨린 주범이 과연 쥐였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검은 쥐+벼룩+사람+예르생균=페스트'라는 등식이 일반적이었다. 1894년 프랑스 과학자 예르생에 의해 페스트균이 발견되고, 1898년 쥐벼룩이 이 병을 옮긴다는 것을 규명하고 난 뒤에는 더욱 그랬다.

책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괴저병이나 티푸스, 천연두 등 증상이 엇비슷한 '유사품'을 페스트로 오인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대신 다른 이유를 내놓는다. 페스트가 창궐했던 14~18세기 유럽은 대기근에 의해 사람들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시기였으며, 쥐들이 온갖 오물과 아무렇게나 버려진 시체들을 넘어 대이동을 한 것은 인류의 전쟁이나 다른 전염병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검은 쥐가 주로 서식하던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에서 페스트의 피해가 미미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치료의 역사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편견을 거듭한 역사였다. 의학사에서 혁명적인 발견으로 평가 받는 수혈은 늙은이와 젊은이의 피를 맞바꾸려는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됐으며, 중세에 '환자들의 호텔'이라 불렸던 병원 역시 그 이전에는 '죄 지은 자'를 감금하는 격리장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한 식물이 '약초'로 이름 붙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지는 이들의 역사적인 추적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인류의 어리석음에 대한 저자들의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기본입장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질병은 인류에게 고통스러운 존재였다"는 것이다

. 6개월 동안 2만 여 명을 감염시키고 그 중 8,50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티푸스의 공포 앞에서, 갑자기 코 안쪽의 연골조직이 파괴되고 손이나 발이 떨어져나가는 한센병의 위세 앞에서 인류는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론이다. 질병에 대한 인류의 오해와 편견의 역사는 결국 질병에 대한 고통의 역사로 치환되는 셈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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