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식품, 패스트푸드에 빼앗긴 입맛의 주권을 회복합시다!'지난 17일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선 다소 생경한 모토를 내건 이색 음식 이벤트가 열렸다. 이 호텔 조리사들이 주최한 '세계 환경 먹거리 축제'.
이른바 음식 조리의 '자연주의' 원칙을 선언하고, 홍보하기 위한 자리였다. 조리사들은 평소 손에 익은 인공재료들, 이를테면 화학조미료나 온실재배 야채, 통조림 상태의 반(半)가공 식품 따위를 일체 쓰지 않은 '환경 먹거리' 들을 손수 만들어 공개했고, 참석자들에게 시식 기회도 제공했다.
행사를 기획한 이병우 조리과장은 "패스트푸드의 대량생산과 속도제일주의에 밀려 전통의 자연주의 조리법이 갈수록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며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음식 본래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선 일선 조리사들부터 새로운 각오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날 행사의 취지는 유럽의 '슬로푸드(Slow Food)' 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로 대표되는 미국식 '패스트푸드화'에 대한 저항운동 말이다.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패스트푸드의 천국' 한국에서 조직적인 안티 패스트푸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경도된 우리의 조급한 음식문화에도 이젠 여유와 사색,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패스트푸드로 인한 '입맛의 획일화'는 우리의 삶을 얼마나 경박하고 멋없게 만드는가. 매일매일 대하는 먹거리마저 빠르고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몸은 얼마나 쉽게 피폐해질까. 슬로푸드 운동가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몸은 어차피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가 아니던가.
이탈리아 본부를 위시해 현재 세계 35개국 400개 지부에 6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슬로푸드 운동가들은 현대인들이 슬로푸드를 먹어야 하는 이유로 ▦먹으면서 돈을 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린다 ▦체중 조절이 쉬워진다 ▦환경까지 보호한다 등을 꼽고 있다. 이 정도면 다소 느리고 번거롭더라도 우리가 선택할말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혹시 오늘도 무심코 아이들 손을 잡고 패스트푸드점을 들렀다면 슬로푸드 정신을 되새겨보자.
그리고 부모의 편의에 의해 아이들의 식성마저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반성하는 시간도 가져보자.
변형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