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고속도로까지 막아가면서 농가부채 경감을 요구하고 나선 21일 기자는 이 문제를 '한국일보 포럼'에서 다루려 했다.농촌 경제가 파탄을 거듭하고 농민들이 큰 고통에 빠져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재원 마련이 어렵고 다른 집단도 비슷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양쪽 의견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독자에게 판단을 맡겨보자는 의도였다.
농민들의 주장이 분명한 만큼 이에 반대하는 주장을 써줄 필자를 우선 찾아보았다. 먼저 농림부에 문의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민들의 요구를 다 수용하려면 너무 많은 돈이 든다"면서도 "그렇다고 농민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글로 써달라는 주문에는 "농민들이 격앙돼있는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글을 쓴단 말이냐"고 회피했다.
다음은 대학 교수들. 농민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는 이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부채 경감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글을 써주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글을 어떻게 쓰냐"는 의견부터 "지금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나는 급한 일 때문에 글을 쓰기 어렵지만 다른 교수들도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써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도 있었다.
기자는 농민들의 어려운 사정에 공감하기 때문에 부채 경감 자체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까지 부채 때문에 농민이 자살하는데도 농가부채 회수를 강행해왔을 때는 그만한 논리가 있어야 합당하다. 농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견해조차 밝히지 못한다는 공무원과 지식인들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논쟁은 없고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닐까.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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