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6일 휴버트 나이스 국제통화기금(IMF) 실무협의 단장이 김포공항에 내렸다. IMF 구제금융 지원조건을 협상하기 위해서였다.우리 국민들은 "한국위기가 생각보다 삼각하다"는 나이스단장의 도착 일성과 그를 '영접하러' 나간 경제 관료들의 다급한 모습을 지켜보며 말로만 듣던 'IMF 체제'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음을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불과 두달전만해도 "한국경제는 위기가 아니다"고 강조하던 IMF였다. 9월말 IMF 총회에서 미셸 캉드쉬 총재도, 10월16일 정례협의차 방한했던 찰스 아담스 아태담당 국장보도 그랬다.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환란이 코앞에 닥친 11월12일 "98년 한국의 성장률은 6%"라며 이전 전망치(5%대)를 상향 조정했다.
이들의 착각도 문제였지만, 이를 통해 '펀더멘털(경제기초체력)에 이상이 없음'을 홍보하려 했던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재정경제원은 11월초까지 "OECD가 한국의 성장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 "구제금융이 반드시 필요치는 않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엉터리 평가와 장밋빛 환상이 빚은 참혹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고, 모든 고통은 한국 국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비슷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OECD는 21일 "한국에 환란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고, 진념(陳稔)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환란은 택도 없는 소리"라며 맞장구쳤다.
제발 이런 말이 틀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진단이고, 이것을 믿고 대비책 마련에 소홀히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진 장관은 "경제는 마음이다. 위기의식이 퍼질수록 경제는 더 나빠진다"고 강조해왔다.그러나 지금 국민들의 마음은 '도대체 정부를 못믿겠다'는 것이다.
경제부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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