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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劉少奇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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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劉少奇 비판

입력
200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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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1월23일 오늘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시내에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를 '반(反) 마오쩌둥(毛澤東) 실권파의 수령''중국의 흐루시초프' 등으로 비난하는 대자보가 처음으로 나붙었다.이와 함께 류샤오치를 반대하고 당주석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홍위병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 날을 기점으로 문화대혁명의 일차 표적이 국가주석이었음이 명백해졌다.

류샤오치는 그 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손자뻘의 홍위병들로부터 야만적인 언어적ㆍ신체적 모욕을 당했고, 마침내 69년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출당(黜黨)과 함께 모든 공직이 박탈된 뒤 비참하게 죽었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76년까지 중국의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의 속살은 권력투쟁이었다. 마오쩌둥은 계급투쟁을 모토로 한 청소년 중심의 이 사나운 대중운동을 통해서 중국 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 다시 말해 이념(紅)보다는 산업(專)을 중시하던 류샤오치ㆍ덩샤오핑(鄧小平) 등의 실용주의자들을 제거했다.

10년 동안 중국 전역을 반문화(反文化) 상태로 몰아간 이 문화대혁명은 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화궈펑(華國鋒)에 의해 마오쩌둥 추종자들인 이른바 4인방 세력이 축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결됐다.

공식적으로는 77년 8월 제11기 전인대에서 그 종결이 선포됐다. 죽은 류샤오치는 80년에 복권됐다.

문화대혁명은 한때 인간의 개조를 통해 평등사회를 겨냥하는 인류의 위대한 실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서유럽의 좌파들을 열광시키기도 했지만, 중국 전역을 유혈이 낭자한 무법의 강제 노동 수용소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것은 20세기 공산주의 역사가 드러낸 가장 끔찍한 얼굴 가운데 하나였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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