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새 바람이 감지된다. 미국에서 12월16일 개봉(한국은 1월13일)하는 'Emperor's New Groove'(가제 '황제 쿠스코')가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는 서사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라이언 킹' '타잔' '알라딘' 에서 보듯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권선징악적인 내용과 백인 우월적인 시각으로 성인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 편이었다.
성인시장을 겨냥한 것일까. 'Emperor's .'에서는 권선징악적인 분위기도 달라졌다.
황제를 궁지에 몰아넣던 마녀는 마지막 응징을 당하는 대신 귀여운 고양이로 변신하게 되는데, 기존의 '인어공주' 등에서 보였던 권선징악적 대결적 구도는 보이지 않는다.
백인우월적 시각 역시 퇴조했다. '타잔'에서 보여주었던 '원시는 야만, 백인은 문명' 식의 이분법적 발상 대신 남미의 자연스런 풍경과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편이다.
'Emperor's .'는 남미 한 산악왕국의 황제 쿠스코가 마녀의 주술에 걸려 라마(남미에서 서식하는 당나귀의 일종)로 변한 뒤 농부의 도움으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영화 음악을 스팅이 작곡했고, 데이비드 스페이드 존 굿맨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타이틀 곡을 부르는 톰 존스의 캐릭터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시작으로 만화 속 주인공이 등장해 "주인공은 농부가 아니라 나 쿠스코이다"라며 정지화면을 통해 이야기 하는 등 철저히 만화 텍스트 안에서 진행되던 이야기 틀이 바뀌었다. 일종의 포스트 모던적인 화법으로 성인 팬들에게 호소한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엘도라도'에서도 감지된 바 있다. 황금을 찾아가는 두 사내의 이야기를 그린 '엘도라도' 역시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남미적 정서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라틴 바람'을 의식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불기 시작한 라틴 음악과 패션, 문학 열풍을 애니메이션 장르에서도 외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 '사우스 파크' '치킨 런' 등 성인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새 수요가 창출됨에 따라 기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역시 20대 이상 연령층을 겨냥한 스토리의 개발이 절실했던 게 사실. 'Emperor's .' 역시 이들의 기호에 맞춘 가벼운 섹스 코드와 농담이 적절히 섞여 있다.
보수적이고 가족적인 애니메이션에서 이제는 20대 성인을 겨냥한 스타일과 감각으로의 변화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 이런 모습이 국내외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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