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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김옥심' 20代청년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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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김옥심' 20代청년이 재조명

입력
200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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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쪼개 3년간적금 25일 추모공연 열어잊혀진 경서도소리의 대명창 김옥심(金玉心ㆍ1925~88)이 한 직장인의 집념에 의해 재조명된다.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실의 김문성(金文成ㆍ28)씨는 3년 동안 빠듯한 월급에서 매달 20만원씩 떼어모은 적금으로 25일 오후 3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김옥심의 추모공연을 마련한다.

그는 1996년 11월 첫눈 오던 날 서울 종로거리를 가다 어디선가에서 가슴 저미는 가락을 들었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김옥심을 추적했으나 CD 한 장 없는 것은 물론,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 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었다.

김옥심은 1950~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오백년'과 '정선아리랑'을 처음으로 불러 만인의 심금을 울리며 '하늘이 내린 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악인들은 김옥심을 대명창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숨쉬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의 소리를 듣노라면 마음 깊은 데서 슬픔이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춘희는 "우리들의 우상, 내 마음의 영원한 스승"이라 했다. 시인 신경림은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을 일러 "노래이기 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김옥심도 44세 때인 1969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방송활동을 중단하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5년 만에 복귀했지만 오래 활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기민요 문화재 지정에서도 탈락했다. 그의 죽음이 석 달 넘어서야 알려졌을 만큼 말년은 한없이 곤궁하고 쓸쓸했다.

추모공연에는 쟁쟁한 명인들이 출연한다. 김옥심의 옛 동료로 이제 70대 노인이 된 경기소리 명창 한정자.박일심.고백화.하진옥 등에게는 마지막 무대가 될 지도 모른다.

나서지 않겠다는 이들을 설득하느라 김씨는 몇 번이고 집을 찾아가 만나 줄 때까지 비를 맞아가며 밤새 기다리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추모 비디오도 상영되고, 평안도다리굿의 큰무당 정대복 명인이 고인의 넋을 달랜다.

"국악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본 적도 없는 김옥심 추모공연을 한다니까 미친 놈 취급을 하더군요. 김옥심이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김씨는 다음에는 서도소리 명창 이진홍 이반도화 이정렬의 추모공연도 열 생각이다. 반지하 셋방에 산다는 그는 이 '공연자금' 마련을 위해 "많은 상금이 걸린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신청을 해 놓았다"고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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