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현대그룹 및 현대자동차 회장 시절 정부 또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여러 비화들을 소개했다.'자동차 외길 32년'이라고 부제를 붙인 이 책에서 정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에서 물러날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상세하게 적었다.
"큰 형님(정주영 전 명예회장)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을 들은 후 현대자동차 계동 사옥을 떠나기까지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32년 걸어온 길을 되돌아 나가는데 3일 걸린 셈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평생 키워온 회사를 떠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흘 내내 큰 형님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큰 형님은 이 같은 뜻을 오래 전부터 간직해 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가 되자 큰 형님의 속뜻을 진작 헤아리지 못한 내가 송구스러웠다."
정 명예회장은 노태우 정부 때 '큰 형님'의 정계진출로 세무사찰을 받아 1,300억원을 추징당한 일,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신축공사비를 절반 밖에 받지 못한 일, 그 과정에서 온갖 압력이 있었던 일 등 정치권의 외압과 갈등도 공개했다.
그는 97년 IMF 사태가 오기까지 김영삼 정부가 아무런 복안도 없이 경제붕괴를 수수방관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80년대 초 신군부의 집권 직후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자동차가 퇴출 외압을 받았을 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답답한 마음에 경제정책을 총괄하던 신병현 부총리를 만나 자동차산업의 존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신 부총리의 말. "포니는 품질도 나쁜데다 가격이 너무 비싸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줬어요. 그거 아십니까? 자동차공장 안 합니다!"
정 명예회장은 또 74년 국내 첫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를 생산하기까지 주위의 반대와 시행착오, 중동에 수출한 포니 시트가 뜨거운 태양볕에 녹아 내리고, 에어컨에 모래먼지가 들어가 낭패를 당한 일 등 일화도 소개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3일 오후 6시30분 하얏트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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