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교 3년생들이 마지막으로 치르고있는 2학기 기말고사가 노골적인 '내신성적 뻥튀기 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내신 뻥튀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히 올해의 경우는 수능이 변별력을 상실함에 따라 '0.5점이 아쉽다'는 인식아래 학교가 앞장서서 문제나 답을 노골적으로 가르쳐주는 '비교육적 행위'가 거리낌없이 횡행하고 있다.
서울 강북 A고는 국사 3학년 기말고사를 앞두고 담당교사가 '태정태세문단세.'를 노래로 가르친뒤 조선왕조 왕이름 넣기 3문제를 주관식 출제했다. 또 해외에 유출된 우리나라 문화재 여섯개를 일러주고는 "이중 3개를 쓰는게 몇번 문제다"라고 미리 귀띔해줬다.
이 학교 김모(18)군은 "한 과목 공부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며 "그래도 대부분이 90점 이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강남 B 고는 지난주말 일제히 과목별로 200문제가 담긴 프린트를 돌렸다. 이 학교 교사들은 "이 프린트에서 기말고사가 모두 출제된다"며 학생들에게 친절히(?) 안내했다.
이모(18)군은 "2개 틀려도 바보소리를 듣는다"며 "선생님도 좋고 학생도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부시간이 부족할까봐' 하루 한과목만 시험친다는 강북 C고는 기말고사 문제를 수능시험용으로 준비했던 참고서에서 출제했다.
게다가 "어느 문제는 참고서 몇페이지 몇째 줄에 나온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덕분에 이 학교 학생들의 지난 중간고사 평균은 70점대였지만, 이번 시험을 통해 대부분 학생이 '수' '우'를 받을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학교에서는 기말시험 당일 아침 '벼락치기'공부가 유행이다. 강북 D여고 정모(17)양은 "3분 공부하고 누가 더 점수 잘받나 내기까지 한다"면서 "시험을 놀이로 여기는 친구들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강북 E고의 한 교사는 "이번에는 고민할 것도 없이 미리 문제를 가르쳐줬다"며 "수능이 변별력을 상실, 학생부에서 이를 만회하라는 교장의 주문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교사는 "시험을 어렵게 내면 학부모는 물론 다른 교사들까지 나서서 질책한다"면서 "시험문제도 마음대로 출제 못하는 교육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시험을 어렵게 내는 학교의 학생ㆍ학부모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한 상태.
국모(53ㆍ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다른 학부모들이 기말시험이 쉽게 나와 전부 '수'가 예상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며 학교측을 원망했다.
이러니 대학들도 학생부 성적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고려대 김성인 입학실장은 "부풀려진 학생부 성적을 신뢰하지 않아 '우'이상은 모두 만점 처리한다"면서 "그 대신 봉사활동 등 다른 자료를 더 중시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관계자도 "고교에서 산출한 과목별 평어를 믿을 수 없어 재학생을 중심으로 학업성취도를 조사, 고교별 학력수준 데이터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 입시에서 뻥튀기성적이 반영되는 수ㆍ우ㆍ미ㆍ양ㆍ가 등 '평어' 평가 학교는 연세대 고려대 등 111개 대, 과목별 석차로 학생부를 평가하는 곳은 서울대 등 74개 대학이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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