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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건강증진기금 폐지 안될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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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건강증진기금 폐지 안될말

입력
2000.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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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가 기업부담과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준조세 성격의 정부기금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국민건강증진기금도 폐지될 운명에 처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한 보건의료단체의 반발도 강력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조치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정부가 그동안 의료개혁 조치로 강력하게 추진했던 의약분업정책이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은 비단 의료계의 이해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보건의료에 대한 재정투자를 소홀히 한 점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민간의 재원에 의존해 온 결과 대부분의 가용재원이 고가의 병원진료에만 투입되고 공공의료나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분야는 황폐화되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 국가는 예방접종 주사마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철폐와 같은 경제개혁이 국민의 기초적인 건강보장에 역행한다면 경제개혁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국가보건정책의 목표는 단순한 의료공급이 아니라 건강증진이어야 한다. 우리는 보건과 의료의 차이를 종종 혼동한다. 병에 대한 공포심이 크기 때문에 일단 병에 걸리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좀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한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의료가 반드시 건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는 질병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효과는 있지만 그것이 건강증진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처럼 크지 않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비를 지출하는 나라이지만 영아사망률이나 평균수명의 측면에서 볼 때 의료비를 적게 사용하며 공공의료가 발전되어 있는 유럽국가보다 오히려 뒤떨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근대의학이 발전한 것은 19세기말엽의 일이지만 유럽인구의 사망률은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급속하게 하락하였다. 유럽인들의 건강수준이 높아진 것은 의료의 덕분이 아니라 식량공급이나 주거, 위생환경의 개선에 기인한다.

건강증진은 잘만 추진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 영양개선과 운동, 구강관리와 건강교육, 일차보건의료의 강화 등이 그러한 방법에 해당한다.

광범위하게는 수질개선이나 공해환경의 개선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러한 분야는 이윤이 남는 시장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 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이러한 분야의 사업은 항시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때문에 일반재정에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고 따라서 건강증진기금처럼 담배 값에 일정액을 포함시켜 재원을 확보하여 왔다.

이러한 실정에서 건강증진기금마저 폐지한다는 것은 국민건강은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건강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노력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건강은 사회적인 산물이다.

예를 들어 상업화한 먹거리가 우리를 비만하게 만들고, 매연이 호흡기에 악영향을 주며,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건강증진은 사회적 문제이고 국가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료개혁도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건강증진에 있다. 의약분업도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 조정이나 의약품 유통시장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일차적인 과제일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약물오남용을 방지하여 국민건강을 증진하는데 목적이 있다.

의약분업이 약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불편하게 만들어서 국민이 약을 적게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처럼 담배 값에 건강기금을 부과하여 담배 값을 올리는 것은 건강증진기금도 확보하고 또 담배를 적게 피우게 만들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규제철폐와 건강증진과 같은 공익을 위한 규제강화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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