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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 전격사임 배경

입력
2000.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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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회 주도권 상실, 부패수사 위협 느낀듯...차기대통령 정권인수기인 내년 7월 퇴진키로 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62) 페루 대통령이 19일 전격 사임을 발표한 속뜻은 무엇일까. 더욱이 자국내에서가 아닌, 체류중인 일본의 페루 대사관 관계자를 통해 사임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두고 온갖 억측과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페루정가는 대통령직 하야가 헌정중단사태를 낳는 중대사임에도 외국에서 사임을 발표한 후지모리의 '상식이하의 행동' 에 경악을 금치못하고 있고, 국제사회도 "신변에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왜 사임했을까

전격 사임을 둘러싼 그의 석연치 않은 행동은 최근의 행적에서 여러 차례 감지됐다. 지난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후지모리는 곧바로 제 10차 이베로_아메리카 정상회담(17~18일)이 열리는 파나마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나마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하고 차관협상을 명목으로 예정에 없던 일본으로 향했다. 당초 일본 관리는 후지모리의 방일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한 일시적인 것" 이라고 말했으나, 곧 이어 "후지모리가 감기에 걸려 체류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일본 외무장관과 "22일까지 도쿄에 머물 것" 이라는 페루 당국의 발표가 잇달았다.

일부에서는 그가 지난 주말 리카르도 마르케스 제 2부통령에게 사임의사를 미리 통보한 점을 들어 사전에 치밀한 망명계획을 세운 뒤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기사퇴에 대한 소문은 국민행동당 발렌틴 파냐과 의원이 16일 후지모리 10년 집권기간 중 처음 야당의원으로서 국회의장에 당선되면서 확산됐다. 야당의원 매수스캔들과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부장의 부정축재,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특별수사 확대로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후지모리가 야당 국회의장의 등장으로 통치권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함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 가까운 미래에 드리워질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조기퇴진이란 술수를 꺼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국회에서는 `몬테시노스 청문회' `부정축재 수사특별법' 등 후지모리를 옭아맬 수 있는 반(反) 부패법안의 상정이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11일에는 피살된 콜롬비아 마약카르텔의 전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친동생이 후지모리 선거캠프에 마약자금을 전달했다고 폭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정국전망

48시간내 사임하겠다는 발표에 따라 21일까지는 공식 사퇴서가 의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살라스 총리는 그가 사퇴서를 제출하기 위해 22일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정말 귀국할 지, 또 4월 8일의 대선ㆍ총선과 7월 정권 이양기까지 누가 과도정부를 이끌어갈 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국회는 국외사임발표가 심각한 수준의 '도덕적 해이'라고 보고 귀국하는 대로 그를 탄핵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강구중이다. 현재로선 후지모리가 e_메일로 사임의사와 함께 '뒷일'을 부탁했다는 마르케스 제 2부통령이 과도내각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선 후보였던 야당 '페루의 가능성'의 알레한드로 톨레도 당수와 국회가 이에 극력 반대하고 있어 권력공백상태가 야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국회는 몬테시노스의 귀국에 반대, 10월 사임한 프란시스코 투델라 제 1부통령의 사직서가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점을 들어 헌법이 정한대로 그가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톨레도는 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4위인 국회의장이 국정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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