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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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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볼테르

입력
2000.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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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오늘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778년 몰(歿).볼테르는 흔히 프랑스 지성사에서 최초의 지식인(앵텔렉튀엘)으로 꼽힌다.

프랑스어에 '지식인'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지만, 볼테르는 에밀 졸라, 장 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로 이어지는 프랑스 지식인 계보의 비조(鼻祖)로 불린다. 그것은 이 18세기 문인이 불멸의 지성을 지녀서가 아니다.

볼테르는 생전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문인이었지만, 극작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철학자로서도 시간의 마모력을 이겨낼 명저를 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식인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사르트르가 정의한 바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또는 "자신의 명성을 '남용'해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식인상(像)을 모범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낸 '극단의 시대'의 종교적ㆍ정치적 광기에 맞서 투옥과 추방을 무릅쓰고 이성과 양식을 좇았다.

프랑스 남부의 '독실한'가톨릭 도시 툴루즈에서 한 개신교도가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른바 '칼라스 사건'(1761)을 볼테르가 용기와 지혜로써 바로잡은 일은 기독교 역사의 인상적인 챕터를 이룬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관용론'(1763)을 썼다.

볼테르는 "내게 제왕의 홀(笏)이 없는 게 무슨 상관이더냐. 내게는 펜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는 실로 다작가였다.

그는 아무 때나 어디에서고 누구보다 빨리 써낼 수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아주 많은 펜이 필요했다. 볼테르라는 이름은 거위들의 천적이었다. 그가 보통의 문인 스무 사람보다 더 많은 거위 깃털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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