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사학과 홍종필(洪鍾?ㆍ63) 교수는 1년의 반은 일본에서 보낸다. 일제시대 징병ㆍ징용으로 이름없이 사라진 희생자들을 찾기 위해서다. 홍교수는 지금도 일본에 있다. 1945년 일본 미에(三重)현 기슈(紀州)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중 일본인에 저항하다 맞아죽은 이기윤, 배상도씨 두 사람의 추모비 제막식이 21일 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홍교수가 1942~45년 기슈광산에서 희생된 875명의 신원과 진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굴한 인물이며 추모비도 홍교수의 요구로 세워지게 됐다. 홍교수의 '숨은 역사 찾기'는 5년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1995년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마부이(絲滿)언덕에 마련된 '평화의 초석'의 한국인 징용자 위령비에 한국인 희생자가 54명만 적혀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옆에 있는 일본, 미국, 영국, 대만 희생자비에는 23만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어요.
우리는 2만명의 희생자를 냈는데 54명뿐이라뇨. 나라도 찾아나서자고 생각했죠." 우선 일본 후생성에 기록된 한국인 희생자 454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모두 창씨개명된 이름으로 기록돼 있어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에 나와 있는 본적을 찾아 전국을 누볐고, 생존자들을 찾아 일본을 뒤지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이름을 확인하면 매년 일본군 오키나와 사령부 항복일인 6월23일 '평화의 초석'을 찾아 이름을 새겨주고 위령제를 지내줬다. 그래서 지금은 26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홍교수는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최근에 드러난 고대 유적 날조에서 보듯이 일본은 틈만 나면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한다"며 "이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학자들이 역사의 진상을 밝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희생자명단을 부채(負債)처럼 연구실 책상 위에 놓고 지낸다는 홍교수는 기력이 있는 날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후손들이 그들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는 일입니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