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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우리도 겨울잠을 잘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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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우리도 겨울잠을 잘수 있다면

입력
2000.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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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유달리 추울 것 같다. 예년에 비해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질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름값이 치솟아 연탄을 때는 집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니 말이다. 비닐하우스의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하루에 무려 천 장이 넘는 연탄을 간다고 한다. 춥고 긴 겨울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동물들의 겨울나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략들이 있다. 기온이 뚝 떨어져 먹거리를 찾기 어려워지기 전에 따뜻한 곳으로 옮겨가는 동물들이 있다. 철새들이 그 대표적인 동물들이다. 가을은 말만 살찌는 계절이 아니다. 철새들도 몸 속에 충분한 에너지를 축적해야 먼 여정을 떠날 수 있다.

나는 이맘때면 가끔 엉뚱한 꿈을 꾼다. 우리도 철새들처럼 철 따라 이동하며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서로 철 따라 세 들어 사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라면 가족끼리 해보면 어떨까 싶다. 여름에는 어느 호주 가족이 우리 집에 와 살고 겨울에는 우리가 그 집에 가서 함께 사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 있어도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못할 일도 아니다 싶다. 하지만 그건 역사를 되돌리는 일이리라. 그 옛날 우리가 농사를 지을 줄 알기 전에는 그렇게 철 따라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역맛살이 더덕더덕했던 그 생활이 싫어 한 곳에 안주하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철새들 중에도 꼭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되면 한 곳에 눌러앉는 것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예전엔 분명히 철새였던 새들이 텃새로 들어앉는 것들이 관찰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덕분에 겨울이 예전처럼 매섭지 않고 인가 주변에는 늘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인 듯 먼 여행을 포기하고 그냥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새들이 늘고 있다.

역맛살이 덜한 동물들 중에는 긴 겨울을 아예 잠으로 때우는 것들이 있다. 흔히 동면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사실 꼭 겨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열대의 동물들은 우기를 기다리며 건기 내내 '건면'을 한다. 아프리카의 개구리 중에는 우기가 끝나기 전에 아직은 물렁물렁한 땅을 파고 들어가 그곳에서 다음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비가 오기까지 어떨 때는 몇 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어떻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을까? 신진대사율을 최저로 해 놓고 그냥 버티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는 곰도 사실 그 오랜 겨울 내내 온전히 꿈나라에 갔다 오는 것이 아니다. 신진대사를 아주 낮춰놓은 상태에서 가을 동안 몸 속에 비축해 놓았던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봄까지 버티는 것이다. 때로 버티기 힘들거나 겨울이라도 어쩌다 날씨가 풀리면 잠에서 깨어나 먹거리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요사이 기름값이 하도 올라 이번 겨울에는 아예 비닐하우스를 닫거나 배를 띄우지 않기로 작정한 농어촌 사람들의 겨울 삶이 동면과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우리도 스스로 신진대사를 낮출 줄 아는 동물이었다면 그냥 이 슬프도록 긴 겨울을 잠이나 자며 보내련만.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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