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8억원의 사나이' '돈 버는 마술사(magic person)' '세계적 패션그룹 휠라의 3인자' '머니 콜렉터' 등 무수한 별칭이 따라붙는 윤윤수(尹潤洙ㆍ55) 휠라 코리아㈜ 사장의 늦가을에 대한 단상(斷想)은 남다르다.내년으로 휠라 코리아 대표 10년째를 맞는 윤 사장은 IMF 고개를 넘기면서도 연 매출 평균 성장률 80.8%(최고 매출성장률 274%)란 기록을 올렸다. 세계적인 의류ㆍ신발업계의 장사꾼 이태리 사업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성과다.
또 휠라 브랜드를 국내 10대들에 각인시킨 그의 경영노하우는 브랜드 파워에 허덕이는 우리 스포츠 패션업계에 가능성을 일깨워줬다.
그런 그의 건강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일 년 중 절반을 외국에서 지내고, 20년간 매주 4,5차례 업무상 술 마시는 생활환경 때문인지 몸이 꽤 상했다"는 윤 사장은 19일 심장협심증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너무 뜨겁다 보니 심장이 탈이야"라고 농담을 던지며 여전히 여유롭다.
종합상사가 기업의 꽃으로 꼽히던 70년대, 윤 사장이 첫 발을 내디딘 직장은 해운공사.
영어실력이 남달랐던 그는 곧 무역이란 하늬바람을 타고 당시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인 J.C.페니(Penney)사로 인생항로의 키을 돌려 바이어로 성장하기 위한 철저한 경영 수업을 쌓았다.
삼성전자가 국내 처음 전자레인지 생산에 들어가 1년 만에 수출 6,000만 달러를 올린 데는 당시 J.C.페니 '진윤(윤 사장의 영어이름)'의 숨은 역할이 컸다.
"한 10년 하다 보니 국내외 비즈니스 역학구도를 꽤 뚫는 무역의 물리(物理)를 깨우친 것 같았다"는 그는 1984년 자신의 회사인 라인실업㈜을 세웠다.
80년대 중반 명동거리에서 팔던 E.T.인형 등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던 그는 결국 신발에 승부를 걸었다.
정말 신발에서 물리가 트였는지 이태리 휠라 본사와 신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휠라 스포츠화 탄생에 외부인으론 유일하게 '키 맨(Key man)'의 역할을 맡게 됐다.
휠라 측은 그에게 휠라 코리아를 맡겼고 윤 사장은 98년 전체 휠라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1억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미국 유럽에 이어 그룹 매출 3위의 입지를 다졌다.
이 같은 성과는 곧 연봉으로 반영돼 '연봉 18억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다. 그의 올해 연봉은 24억원이다.
그는 새벽 5시 기상,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 8시 각 팀장들과의 회의, 9시30분 주요 회의내용과 각종 정보를 전 사원과 함께 공유하는 오전 일과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
전날 밤의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나 외국 출장 중인 경우 전화를 통해서라도 오전 스케쥴만은 철두철미하게 완수한다.
윤 사장은 "인생이란 구름 낀 가을 하늘을 항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맡은 일에 성실하고 정도(正道)를 걷는다면 구름이 구름이겠느냐"고 알쏭달쏭한 화두를 던졌다.
◆ 약력
* 1945년 경기 화성 출생
* 서울고-한국 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
* 해운공사-J.C.페니(Penny)-㈜화승 수출담당 이사-대운무역 사장
케어라인㈜ 대표이사-휠라 코리아㈜대표이사-한빛은행 비상임이사(경영발전보상위 원회)
한-이 비즈니스 협회 초대회장-중소기업협동중앙회 정책위원 한국산업포상(92.12.) 다산 경영상(98.6.) -납세의 날 대통령상(2000.3)
* 이효숙 여사와 1남1녀
◆ 휠라 그룹은?
휠라는 1923년 이태리 비엘라에서 탄생된 스포츠 브랜드로 현재 이태리의 패션 그룹을 이루고 있는 Hdp에 속해있다. 한국 등 50여개국에 9,00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Hdp 그룹은 신사 숙녀복으로 유명한 발렌티노의 모기업으로 캘빈 클라인과 조지오 아르마니의 대용 생산ㆍ판매를 맡고 있다.
91년 설립된 휠라 코리아㈜는 이태리 휠라 브랜드의 파워와 국내에서 펼친 공격적인 마케팅이 조화를 이루면서 98년 전체 휠라 매출의 10%를 차지해 그룹 매출 3위에 올랐다.
지난 시드니 올림픽에선 북한 올림픽 대표팀을 적극 지원한 휠라 코리아는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장학만기자
■My 키워드
▲기본에 충실하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휠라 코리아의 영업이 활기차게 치솟던 94년. 세간에 휠라 대리점만 하나 열면 매달 3,000만~4,000만원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청와대 비서실 등 곳곳에서 청탁이 폭주했다.
5,000만원의 프리미엄을 줄 테니 대리점을 내달라는 유혹의 손길도 있었다. 월급쟁이 사장으로 눈을 한 번만 감으면 이를 챙길 수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최고 경영자가 무너지면 휠라 코리아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비즈니스 텍스트의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 결국 휠라 코리아의 투명성과 페어플레이는 국세청과 동종업계도 공인하는 기업문화로 정착됐다.
▲ "브랜드 파워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연계돼 있다"
우리의 고유 브랜드인 고추장과 된장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우선 깨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얘기는 그 만큼의 시간투자와 타 문화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았을 때나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는 폭포를 역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외국 유명 브랜드를 사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인이 닥스나 엘리스와 같은 외국 유명 브랜드를 잡기위해 수천만 달러를 투자한 걸 보고 배워야 한다.
▲ 유능한 CEO는 자신이 나서서 남들을 다그치기 보단 직원들의 장점과 자발적 노력을 불어 일으킬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다.
경쟁논리는 어느 곳에서도 통한다. 협력업체들에게 품질제고나 반품이 없을 경우 전체 납품 가에서 5%의 인센티브를 준다.
대리점들의 업소 청결상태와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1%라도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사내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체계도 성과에 따라 다양할 만큼의 차등을 줘 개인의 자발적 노력을 독려한다. 이것이 곧 CEO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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