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미국 기자였던 이경원씨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웨스트 버지니아주 '찰스턴 가제트'지에서 일했다. 그의 미국선거 취재담을 들은 적이 있다.당시 웨스트 버지니아주는 주지사, 주의회, 경찰, 판사까지 모두 민주당 판이었다. 선거 때면 공화당원은 경찰에 의해 투표장에 못들어 갔고, 5달러에 표를 사는 것은 민주당의 전술이었으며, 3년 전에 죽은 사람이 유권자가 되어 한 표를 행사하는 유령투표가 횡행했다.
"그럴 리가."라는 반문에 그는 "당신은 미국을 몰라"라며 웃었다.
■미국인들은 선거를 치른 지 보름에 이르건만 아직 누가 다음 대통령인지를 모른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표지에 백악관을 배경으로 부시와 고어의 얼굴을 반반씩 컴퓨터 합성사진으로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풍자했다.
200년 전통의 민주주의 모범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 헌정위기에 외국인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황하는 미국 신봉자도 있고, 고소해 하는 미국 비판자도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인류보편의 정치적 가치로 정립되어 있지만 나라마다 수용문화가 다르다.일률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만 해도 그렇다.
비판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면 이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며 민주주의에 어긋나서 이를 고치기만 하면 플로리다 사태와 같은 일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연방국가이다.
■미국은 제도적으로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연방국가로 성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도가 타협의 산물로 태어났다.
19세기의 선거관리가 오늘날 만큼 공정했을 리도 만무하다. 엉터리로 선출된 대통령이 훌륭하게 통치했었을지도 모른다. 부시와 고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지켜볼 가치가 있는 일은 이 딜레마를 누가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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