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내 전공은 한국 길의 역사이다. 흙 길에다 말이나 달구지가 다니던 도보교통 시대의 이른바 과거(科擧)길. 일제침략기에 만들어진 2차선 너비에 가로수를 심은 신작로(新作路). 해방 후 순차적으로 생긴 아스팔트 포장도로. 197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한 고속도로.그리고 요즘에는 예전의 '신작로'인 일반국도를 4차선 확장도로로 만드는 공사가 전국 곳곳에서 한창이다.
나는 옛길답사를 위해 전국을 걸어 다니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XX번 국도 확장공사'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단순히 폭만 넓히는 확장공사가 아니다.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직선화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땅을 매수해 평지에서는 성토(盛土)를 하고 언덕에서는 흙을 깎아서, 말하자면 낮은 단계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 신작로'는 확 뚫려서 보기에 기분이 좋긴 하다. 공사 완공 전에는 4차선 너비의 넓은 길을 독차지하면서 걸을 수도 있다. 개통 뒤에도 갓길이 정비되어 있으니 갓길이 있으나마나한 2차선 신작로보다 안전하게,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편리함을 실현시키기 위해 치러졌던 엄청난 대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지에 확장도로가 생길 경우 소중한 농지가 많이 훼손된다.
또 좁은 골짜기가 많은 한국의 지형에서는 골짜기 밑 가경지(可耕地)가 아예 소멸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산간지역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의 대표 요소인 산 능선이 멋대로 잘려 나간다.
심지어 이런 풍경을 볼 때도 있다. 충남 공주시 광정면에서의 일이다. 그리 넓지도 않는 골짜기에 차령고개에서 내려 온 23번 국도가 나 있다.
왼쪽 산을 보면 바로 이 신작로의 확장공사가 산 중턱을 정확히 자르면서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역시 산 중턱을 자르며 도로공사가 한창인데 바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공사이다.
현재 왕복 2차선으로 교통정체도 별로 없는 이 길을 이렇게 하면서까지 왕복 8차선으로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인가. 국도는 건설교통부, 고속도로는 도로공사로 주무부처가 다른 것은 이해하지만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생긴다면 확장공사는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교통동맥을 위한 투자는 필요하긴 하지만 귀중한 환경이 훼손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불필요한 도로건설을 삼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도로키 히로시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ㆍ일본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