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양된 한나라휴일인 19일 이회창(李會昌) 총재 주재로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 회의의 주조는 초강성이었다. 당 지도부는 검찰 수뇌부 탄핵소추안 처리 무산을, 청와대 각본ㆍ민주당 감독ㆍ이만섭(李萬燮) 의장 주연의 '짜고치기 사기극'으로 규정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민주당의 공식 사과,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 대검차장의 즉각 사퇴, 이만섭 의장의 자진 사퇴를 공식 요구했다.
이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기왕에 합의된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키로 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모든 의사일정'의 범위와 관련, "예산안 처리와 공적자금, 월요일(20일)로 연기된 통일ㆍ외교ㆍ안보분야 대정부질문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이 요구와는 별개로 이미 18일 국회의장 사퇴 권고 결의안을 제출했으며, 이 의장이 사회를 보는 회의는 일절 거부키로 했다. 또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을 다시 제출키로 결정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한나라당의 공세는 간명하고, 그런 만큼 선명하다. 하지만 향후 정국전개에 관한 속 계산은 꽤나 복잡하다.
한나라당은 여권과 민주당이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대신 민주당이 민생국회라는 대의를 내세워 자민련의 도움을 얻어 단독국회를 진행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민련 갈라치기를 통해 민_자 공조의 근원적 한계를 확인해 내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여권이 스스로 파행을 자초한 만큼 정국주도권은 한나라당에 있다'는 나름의 믿음이 깔려 있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절한 시점을 택해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라는 명분 아래 국회에 전격 복귀하는 방안, 12월 초에 열릴 여야 영수회담까지 상황을 이어가면서 여권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방안 등을 놓고 상황에 맞게 신축적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 대변인이 19일 당직자 회의 브리핑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파행을 언제 중지할지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대책부심 민주당
민주당이 '의장 저지를 통한 탄핵안 상정 봉쇄' 이후의 정국 수습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단 여론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탄핵안 원천봉쇄의 불가피성을 알리는 데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다.
서영훈(徐英勳) 대표도 19일 정쟁 중지를 호소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으로서 한나라당의 부당한 기도에 결연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탄핵안 재제출 움직임에 단호한 대처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사과요구와 관련해서도 "말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광고를 신문에 게재, 대국민 홍보에도 나섰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집권당에 그리고 공권력에 그만큼 상처를 줬으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여기서 더 나가면 그야말로 끝장을 보자는 얘기"라며 이번 정기국회의 '민생 국회'로의 복귀를 호소하고 나섰다.
서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공적자금 문제의 시급성 등을 강조하면서 "내년 2월까지 모든 정쟁을 중단, 여야가 함께 경제 살리기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국회 거부가 장기화해 공적자금의 적기 투입이 불가능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상황 악화에 대해 한나라당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그래서 '경제 살리기'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에 역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다소의 냉각기를 거쳐 국회가 복원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지만 장ㆍ단기적으로 수습책 마련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적 열세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에 비추어 김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회대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위태위태하던 자민련과의 공조 문제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 것도 민주당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고태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