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탄핵안 자동유회까지민주당과 한나라당은 17일 검찰 수뇌부 탄핵소추안을 놓고 우보 전술 대 속보 전술로 지리한 싸움을 벌였으며,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여당 국회의장의 본회장 입장을 막는 촌극 끝에 본회의가 자동 유회됐다. 이날 민주당은 잦은 의원 총회, 본회의장 지연 입장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었고 한나라당은 정부 측 답변의 서면대체, 보충질의 포기 등의 희생타를 날리며 시간을 아꼈다.
밤 11시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 정회 중 자민련 의총에서 의원 9명이 당 지도부의 불참 지시를 거부하고 본회의장으로 입장하자 다급해진 민주당 의원들이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을 의장실에서 못 나오게 막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의 육탄 방어로 이 의장이 밤 12시를 넘어서도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해 본회의가 자동유회돼 이날 탄핵안 표결은 일단 무산됐다.
■탄핵소추안 의사일정 추가
밤 11시. 민주당 박주선(朴柱宣) 의원이 마지막 보충질의를 끝내자 이만섭 의장이 "대정부 질문을 종결하고 탄핵소추안을 의사 일정에 추가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어 "민주당의 의원총회, 기표소 설치 등을 위해 잠시 정회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본회의장을 빠져 나갔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제히 "시간이 몇 시인데 정회냐"고 고함을 질렀다. 이 의장이 "(회의가) 시작만 되면 차수 변경을 한다"고 하자 한나라당 의석이 잠잠해졌고, 몇몇 의원들은 "의장을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장실 격돌
정회 이후 1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장이 아닌 의장실로 올라갔다.동시에 보도진들이 몰려들면서 사실상 이 의장은 의장실에 갇힌 상태가 됐다.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 총무는 "민주당이 의장을 사실상 감금하고 있다"며 김무성(金武星) 수석부총무 등 30여명의 의원들을 의장실로 급히 올려 보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차수 변결을 하든 지 홍사덕(洪思德)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양당 의원들 사이에 고성과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밤 12시 55분께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있는 종안 이 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의장실을 나와 공관으로 떠나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홍사덕 부의장 사회 시도
한나라당은 정창화 총무가 이 의장을 설득하는 동안 본회의장 안에서 이회창(李會昌) 총재 주재의 긴급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김기춘(金淇春) 의원 등이 "의장이 유고 상태이므로 홍사덕 부의장이 사회를 보면 된다"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홍 부의장이 자민련 의석으로 다가가 의사를 타진했지만 자민련 의원들은 "사회권을 위임받지 않은 상황에서 회의를 속개하면 모두 퇴장하겠다"고 이를 거부했다. 자민련 의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방비책을 세웠길래 이렇게 됐냐", "홍 부의장이 사회를 보는 것은 자승자박이 된다"는 등 한나라당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자민련 의원들은 이어 "밤 12시30분까지 사회권을 위임받지 못하면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한나라당측의 애걸(?)에 선심이라도 쓰듯 "그러면 새벽 1시까지 기다리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본회의장 신경전, 치열한 자민련 구애전
이에 앞서 정부 측 답변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 총무는 이한동(李漢東) 총리의 답변이 길어지자 "간단하게 답변하라"며 걸고 넘어졌고, 민주당 의원들은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하라"며 대응했다. 민주당은 또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을 대상으로 한 보충 질의에서는 한결같이 탄핵소추안의 부당성을 제기,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한편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경쟁이라도 하듯 자민련에 러브콜을 보냈다.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 유용태(劉容泰) 의원 등이 강창희(姜昌熙) 이재선(李在善) 의원과 귓속말을 나눴고, 한나라당에서는 권철현(權哲賢) 대변인, 이재오(李在五) 의원 등이 수시로 자민련 의석을 찾아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민련 송광호(宋光浩) 의원이 대정부 질문을 끝내자 "잘 했어"라며 격려를 하기도 했다.
■검찰의 현장 로비
대검의 유창종(柳昌宗) 강력부장과 이범관(李範觀) 공안부장, 강경필(姜景弼) 공주지청장 등은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국회 본관 5층의 국회 파견 검사실에 머물며 자민련 의원들과 맨투맨으로 접촉, 막바지 총력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 같은 첩보를 입수, 원희룡(元喜龍) 의원을 비롯한 사무처 직원들이 국회 본관 5층의 국회 파견검사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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