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법 / 존 롤스 지음 / 이끌리오 발행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거두 존 롤스(하버드대 명예교수)는 그의 기념비적 저작인 '정의론'(1971)과 '정치적 자유주의'(1993)에서 자유적 민주정체에 적용되는 합당한 정의관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원칙을 제시했다.
여기서 '합당성'이란 평등한 존재로서 타자도 수용할 수 있는 것, 따라서 공적(公的) 이성과 불가분인 것을 가리킨다.
1999년 12월에 출간된 그의 '만민법'은 이러한 원칙을 국제사회로 확대, '합당하게 정의로운 자유적 만민의 외교정책과 이상을 고안해 내고자'쓰였다. 이 책은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라는 인류의 오랜 이상을 '현실적 유토피아'로 바꾸려는 대담하고 진지한 시도이다.
그것은 '헛된 꿈'이라는 냉소에 부닥칠 수도 있다. 나라별 빈부 격차와 정치ㆍ문화적 차이가 서로 충돌하는 분열된 세계에서 만인이 합의할 수 있는 국제법의 원칙, 곧 만민법이 과연 가능한가.
롤스는 만민법이 '현실적 유토피아'로 가능함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정의론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원칙 중에는 고통받는 다른 나라 국민을 도와줄 의무도 표함돼 있다. 이러한 원조의 의무는 인권을 내세운 내정 간섭으로 비칠 수도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때문에 롤스는 원조의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기초 개념은 인권이다. 그것은 인간이 시민으로서 가지는 권리 이전의 보편적 권리로서 만민법의 기초 개념이 되고 있다.
롤스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만민은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 깔려있다. 위대한 철학자의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어렵고 딱딱한 책은 그래서 감동적일 수 있다.
'만약 정의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인간이 지구상에 살 필요가 없다'는 칸트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합당하게 정의로운 만민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합당한 목적에 예속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리고 인간이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냉소적이고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매우 무도덕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칸트가 그랬듯이 인간들이 이 지구에 살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묻지 않겠는가."
이 책은 롤스 사상 전문가인 장동진 연세대 교수와 역시 롤스 연구로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기호, 김만권씨가 공동번역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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