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이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을 만나 현대건설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6일 오전 현대차 관련 주가가 일제히 폭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이 위원장은 "시장에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지원하라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시장의 반응은 하루종일 냉담했다.
'이려~ 회동'은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정몽구 회장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현대사태 조기 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정부가 재벌 집안 싸움에 중재자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오점을 남겼다.
현대건설을 살리는 게 아무리 국가적 중대사라 할 지라도 주채권은행도 아닌,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감위원장이 집안 문제에 끼어 들어 형제간 화해와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크게 벗어난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재벌개혁의 핵심사안으로 황제(오너)경영 종식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현대사태가 터지자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황제의 힘에 의존해 해결하려 한 것이다.
'이 정 회 동'도 그렇게 비쳐진다.
취임 일성으로 "재벌과는 직접 상대 안한다"고 강조해온 이 위원장은 이날 "공적자금을 써야 할 입장에서 국민 부담을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MK를 만났다"고 말했다. 국민에 대한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정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닌가. 주주들이 반기지 않는 일을 정부가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다.
현대차의 현대건설 지원으로 현대차 계열사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거나 주가가 떨어져 주주들이 손실을 입으면 정부는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가.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