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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가을동화' 추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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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가을동화' 추억을 찾아서

입력
2000.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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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가을… 나는 벌써 가을이 그립다"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바캉스가 절정이던 때였다. 하조대 해수욕장을 찾았다. 여관은 물론 민박도 만원이었다. 갈팡질팡했다. 순진하게 생긴 농촌 총각들이 호객을 했다. "조금 멀지만 조용해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경운기를 타고 20여 분을 흔들린 뒤 도착한 곳은 정말 조용했다. 마을 이름이 예뻤다. 여운포리(강원 양양군 손양면).

지금도 그렇지만 철책이 쳐진 해안이었다. 바다를 지키는 초병은 살 빛이 하얀 서울 아가씨들의 웃음과 담배 몇 갑에 출입을 허락했다.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여운포 바다의 아름다운 물빛이다. 밑바닥이 울퉁불퉁해서일까.

파도는 달려오면서 색깔을 바꿨다. 옥색, 하늘색, 녹색, 코발트, 회색..

세월이 흐른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여운포에는 갈색 파도도 있다. 흐드러진 갈대밭이다. 7번 국도를 타고 하조대를 지나 조금 북상하다 보면 바다쪽으로 갈대의 바다가 펼쳐진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서 있을 뿐 온통 갈빛이다. 호수도 없는 곳에 이렇게 넓은 갈대밭이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찾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 갈대밭이 요즘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청률 1위로 막을 내린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준서(송승헌 분)와 은서(송혜교 분)가 이 곳에서 갈대 바람을 맞으며 아픈 사랑을 속삭였다.

드라마는 감동의 울림 만큼 여행의 명소를 만들어낸다. 동해의 해안선만 따져 봐도 '모래시계'의 정동진, '그대 그리고 나'의 영덕항이 있다. '가을동화'의 무대도 그 뒤를 따를 수 있을까. 분명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운리는 여운포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상운초등학교가 있는데 이제 학생들은 다니지 않는다. 폐교이다. 대신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들어있다. 소설가 김하인씨와 도자기를 굽는 정재남, 김경동씨가 있다. 상운초등학교란 현판 대신에 '핸드 메이드(Hand Made)'라는 간판을 달았다. 도자기 소품을 만들어 팔거나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는 이 곳은 '가을동화'에서 준서의 작업실이었다.

'핸드 메이드'는 5월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연륜에 비해 사연이 많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핸드 메이드'가 만들어 낸 슬픈 사랑은 '가을동화'가 처음이 아니다. 현재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고 있는 김하인씨의 소설 '국화꽃 향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여인 미주와 그의 남편 승우가 이 곳에서 마지막 사랑을 나누었다.

승우는 죽어가는 아내와 함께 이 곳 운동장의 은행나무를 돌며 춤을 추었다.

여운포리 남쪽은 하조대이다. 행정구역상 현북면 하광정리이다. 하조대 하면 흔히 해수욕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하조대는 멋진 바위에 들어앉은 정자이다. 해수욕장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km를 더 들어가면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하륜과 조준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어서 하조대(河趙臺)란 이름이 붙었다. 대에 오르면 양쪽으로 커다란 바위 두 개가 펼쳐진다. 오른쪽 바위는 가지를 뒤튼 노송을, 왼쪽 바위는 등대를 얹고 있다. 계단과 오솔길을 따라서 두 바위를 오갈 수 있다. 바위 사이에 들어와 있는 바닷물의 색깔이 곱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연이어 펼쳐진다. 동산, 죽도, 인구, 광진리, 남애해변이다. 여름에는 붐비지만 지금은 한산하다. 철 지난 바닷가에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달래는 바람이 분다.

양양=권오현기자

koh@hk.co.kr

■폐교서 도자기굽는 정재남씨

'핸드 메이드'(Hand Madeㆍ033-672-4054)에는 요즘 평일에는 150여 명, 주말에는 500여 명이 찾는다. 원래 사람을 끌어들이려 만든 곳은 아니었다. 강릉의 도자기꾼 정재남(38)씨가 마련한 작업실이다. 정씨는 몰려 오는 사람들을 보며 소설과 드라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더 많은 도자기를 굽고 지방 문화에도 기여하길 바랬는데 일이 여기까지 왔네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외국인들도 찾아오는 아름다운 곳이 되기를 바래요."

정씨가 폐교를 고쳐 핸드 메이드의 문을 연 것은 5월. 도자기 교육 프로그램 등 교육적 목적이 인정돼 연간 590만 원이란 싼 값에 학교를 빌릴 수 있었다.

100인 클럽이란 도자기 여성 동호회를 구성했다. 엄마가 가입하면 아빠, 아이는 무료로 도자기 실습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년 회비는 단돈 5만원이고 재료비는 각자 부담해야 한다. 이 모임을 바탕으로 도자기 만들기 대회, 여름캠프 등을 계획하고 있다.

'가을동화'의 인기에 맞춰 '준서ㆍ은서컵'(세트 1만 2,000원)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썩 좋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납품을 바랬지만 정씨는 거절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지방 특산물이라는 빛이 바랩니다. 반드시 이 곳에 와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매력이 있지요. 앞으로 이 고집은 안 버릴겁니다."

정씨의 요즘 고민은 청소. 수백 명이 몰려왔다가 돌아간 작업실은 엉망으로 변하기 일쑤이다. "저희도 방법을 강구해야겠지만 일단 찾아온 분들이 예의를 지켜 줬으면 해요." 정씨의 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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