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커피씨 두개 심는 이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커피씨 두개 심는 이유

입력
2000.11.16 00:00
0 0

지난 여름 브라질의 한 커피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지에 정착한 일본인이 경영하는 전형적인 대규모 커피단지의 하나였다. 커피의 생태에 접해 본 일이 없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커피 나무의 종묘과정이었다. 새 묘목을 길러내기 위해 많은 모래 주머니에 먼저 두 개의 커피 씨를 심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 잘 자란 것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두 개의 씨앗을 심는 것일까. 그 답변이 전혀 뜻밖이었다. 수십년간 경험을 통해 하나의 씨앗보다는 두 개를 심어야 잘 자란 종묘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절대 크게 자라지 않고, 세 개 이상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개의 씨앗이 작은 영토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라기 때문에 그 중 하나는 틀림없이 종묘로 선택된다는 것이다.

커피 씨도 경쟁을 한다. 동식물의 생태를 사회현상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생물학적으로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농장주인의 입장에서는 경쟁의 결과 우량한 종묘를 얻을 수 있으니 두 개의 씨를 뿌리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커피뿐이랴. 소비자에게는 언제나 독점보다는 경쟁이 좋은 것 아니겠는가. 통신이나 항공운송 서비스도 경쟁체제로 바뀌면서 달라졌고 자동차나 가전제품도 경쟁하기 때문에 좋아진 것 아닌가.

공기업의 민영화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전력과 통신 등 거대한 공기업의 독점체제를 경쟁이 가능한 체제로 바꾸어 주자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경영의 효율성이 증가하고 그 혜택은 소비자인 국민과 종업원인 근로자에게 돌아간다는 당위성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역설적으로 독점화한 공기업의 비효율은 국민경제에 그대로 전가될 따름이다. 이것은 선진국의 실증적 경험에서도 이미 입증된 결과이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민영화는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때로는 정책의지가 약했고, 노조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고, 증시여건에 취약하거나, 국부유출의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논리들이 민영화를 지연시킬 만큼 타당한 것들인가.

우선 국부유출론을 생각해 보자. 공기업의 경영권을 외국인이 차지한다고 국부가 유출되는가. 최악의 경우에도 한국에 투자한 실물자산을 뜯어서 외국으로 가져갈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투자수익을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수익은 국내투자자도 같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수익의 정도는 시장가격과 정부의 규제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경영효율이 높아진다면 그 혜택은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누가 소유하고 경영하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것은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오히려 공기업의 비효율이 국민경제에 전가되어 국부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많은 공기업의 부채가 지금 누구의 짐이 되고 있는가. 문제의 핵심은 누가 주인인가가 아니라 경영의 효율성이다. 그렇다면 민영화는 효율성을 보장하는가. 정부의 간섭 없는 자율성과 시장의 경쟁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그만큼 좋게 한다.

고용의 안정성에 대한 노조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민영화는 안정성을 위협하지만 노조가 그토록 숙원하던 임금의 현실화와 능력에 대한 보상을 앞당긴다. 경쟁은 항상 조직내부의 구성원을 힘들게 하지만 사회전체로는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커피도 경쟁하는데.

더 이상 독점체제에 안주하며, 경쟁의 효율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더 이상 공기업의 민영화를 미루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공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정갑영ㆍ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