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비연수'에서 원수로 대립하는 매족과 화산족은 '쉬리'의 남북분단상황과 유사하다. 원수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단(김석훈)은 유중원(한석규)이고, 사랑 때문에 부족을 배신하는 적(설경구)은 박무영(최민식)과 비슷하다. 그 사이에 갈등하는 비(최진실)는 방희(김윤진)이다. 아니면 연(김윤진)에게서 방희 그 자체를 느낄 수도 있다.설경구에게서 강렬했던 최민식의 이미지가, 김윤진의 비통한 모습에서 방희의 냄새가 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들이 아니라도 '단적비연수'는 '쉬리'와 닮아있다.
영화 초반 박무영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살인연습을 하고 부족장 수(이미숙)는 부족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딸 비를 피의 제물로 바치려 한다. 극한의 적개심과 복수심이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운명은 넘기 힘든 것이 되고 원수를 사랑하는 주인공들의 비극성도 커진다. 죽음이 둘을 갈라 놓아도 변치않는 사랑이 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강제규가 직접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고 '단적비연수' 는 강제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감독을 신인(박제현)으로 한 것은 어쩌면 어설픈 변명을 위한 장치에 불과할지 모른다. '쉬리' 가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다음 작품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모를 리 없는 강제규이기에 40억원이란 제작비에 걸맞는 스타시스템, '은행나무침대'의 속편이란 카드를 빼들었다. 그것이 100%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배우들에게는 이전 출연작의 이미지가 강하게 연상됐고, 속편이란 설정은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관객과 영화를 불편하게 했다.
이제 두 편의 영화로 '강제규표 블록버스터' 의 실체는 분명해졌다. 그의 영화는 철저히 멜로를 지향한다. '이루지 못할 비극적 사랑이 주는 감동' 을 보여주는 그 영화는 단순하고 전형적이다.
감동과 비극성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던 불가항력적이면서 시대와 상황, 이를테면 남북분단, 고대 부족사회로 들어가는 모험을 한다. 전체를 우선하는 사회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개인의 감정은 더욱 비장하다.
이런 곳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으로, 원시성이 넘치는 직접적인 액션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이다. 만약 그들의 삼각관계를 현대의 일상에 옮겨 놓았다 하자. 얼마나 맥 없고 유치하고 우스울까.
사실 좋은 영화는 단순하다. 문제는 그 단순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듯한 옷을 입히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강제규 영화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전쟁과 사랑의 신화가 빈약하고, 영화로 만든 전례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설픈 소도구나 컴퓨터그래픽으로 감추려고 하면 오히려 앙상한 멜로만 크게 보인다. 처음 시도한 시대 배경에 빠져 영화를 보는 것은 두 번도 많다. '단적비연수'에 대한 엇갈린 반응과 평가가 벌써 증명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