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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년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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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년을 위한 변명

입력
2000.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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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경제위기가 사회적 약자를 강타하면서,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밝은 미래가 있는가'를 반문한다.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을 생각하게 된다.대학문화를 접하면 늘 마음이 우울해진다. 노랑 머리와 남학생들의 귀걸이는 그런대로 개성으로 보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진지한 학술토론회 개최보다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음악소리와 춤파티로 끝나는 대학축제나 강의실 곳곳에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는 나도 참을성을 잃는다.

우리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탈정치화했고, 소수는 관념적 급진주의에 빠져 있다. 독서를 하지 않은 세대가 컴퓨터나 영상매체를 통해 얻는 방대한 양의 지식이 과연 건강한 지적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다.

에릭 홉스봄은 널리 알려진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미래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혁명에서 찾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청년문화의 급속한 변화이다.

그에 따르자면 청년문화는 구매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또한 그들의 문화는 놀랄 만큼 국제적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청년문화는 민중적이면서 동시에 도덕률 폐기론적이다. 지구촌 어느 구석, 어느 하층계급에서 사랑받던 춤이나 노래가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 불과 몇 달 안에 세계를 휩쓸게 되었고, 문화가 하층에서 상층으로 체계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게는 이제 선배 세대들이 그리도 집착했던 자유니, 평등이니, 민족이니, 반독재투쟁이니 하는 이념이나 도덕률 따위는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고, 각각의 개체가 지닌 자유로움과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청년문화의 이런 비관적 측면들을 그들의 탓만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지난 10월 17~21일 열린 아셈 민간포럼이 발표한 공동성명서는 모든 아시아렝?느~ 청년들이 더 이상 비참한 소년노동에 시달리거나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성명서는 청년들이 더이상 세계화의 희생자가 되어 실업자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가 그들에게서 모든 사회적 정치적 발언권을 빼앗은 채, 단지 '소비의 주체'로만 호명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기를 요구하였다.

민간포럼의 '청년분과'가 파악한 대로, 풍요한 부모세대는 청년들을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였을 뿐, 청년들에게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 분야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봉쇄해왔다.

경제적 성장에 비해 유난히도 후진적인 정치분야에서 386세대가 시도하였던 정치문화 개혁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면서, 소진되어가고 있는 현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우리는 대학을 나오면 '실업자로서의 삶'이 열려 있을 뿐인 청년들에게 정당정치에 참여하고, 경제와 문화정책 등에 대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열어주어야 하고, 사회는 청년들?발언을 경청해야 한다. 청년들의 건강한 요구가 반영되는 사회만이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현백ㆍ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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