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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故 잉창치씨의 바둑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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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故 잉창치씨의 바둑사랑

입력
2000.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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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렸던 제4회 잉씨배 결승 5번기 제1, 2국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의 창하오 9단에게 2연승,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직 결승 5번기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국내 바둑계에서는 두 기사의 역대 전적(이창호가 9승 1패)으로 보아 이창호의 우승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잉씨배 창설 이후 4회 연속 한국 기사 우승이라는 대기록이 수립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다.1988년 대만의 부호 고 잉창치(應唱期)씨가 창설한 잉씨배는 우승 상금이 40만 달러로 세계 최대.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개최는 당시 바둑계로서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세계 바둑계는 국가 별로 국내 기전을 개최하는 정도였지 세계 대회를 열어 바둑 분야의 세계 챔피언을 가려보자는 시도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이었다.

한데 결과적으로 잉씨배로 인한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것은 바로 한국 바둑계였다. 일본과 중국세에 밀려 바둑 약소국에 머물렀던 한국 바둑계가 조훈현 9단의 잉씨배 우승을 계기로 일약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만일 당시 잉씨배가 개최되지 않았더라면 한국 바둑은 자신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잉창치가 세계 대회를 개최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뜨거운 바둑 사랑에 기초한 것임은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그가 무척 아꼈던 린하이펑이나 녜웨이핑 등 중국계 기사들의 우승을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바둑 자체에 심취한 그에게는 어느 나라 기사가 우승을 하느냐는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지난 8월 강릉에서 열렸던 제4회 잉씨배 준결승전에 참석했던 잉씨의 아들 잉밍하오 잉창치바둑교육기금 회장은 "언젠가 누가 선친에게 물었다. 만일 한국이 응씨배에서 계속 우승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그때 선친은 '한국이 계속해서 우승해도 전혀 관계없다.

이 대회가 이창호 같은 기재의 탄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한국은 물론 세계 바둑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약간은 외교적인 발언이겠지만 그만큼 세계 바둑을 아끼고 사랑했던 잉씨의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그가 타계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잉씨 사후 한동안 대회 자체가 없어지리라는 풍문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후에도 잉씨배는 물론 각종 바둑 보급 사업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바둑교육기금의 규모를 대폭 늘려 놓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끝없는 바둑 사랑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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