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선거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곳은 `나비투표용지' 의 팜 비치 카운티만이 아니다. 중부에 있는 인구 42만명의 볼루시아 카운티는 이번 수작업 재검표 과정을 통해 투ㆍ개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진풍경의 `모든 것' 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우세후보가 수시로 뒤바뀌는 것은 예사고, 투표 당일 컴퓨터 단말기가 고장나 개표결과가 제때 전송되지 못하는 등 원시적 사고가 잇달았다.
확인되지 않은 보따리를 들고 사라진 개표요원을 수배하느라 보안관들이 법석을 떠는가 하면, TV 카메라 앞에서 재검표가 한창 진행되던 중 투표용지가 가득 든 보따리를 든 선거관리요원이 개표장에 뒤늦게 나타나기도 했다.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이 지하서고에서 발견됐고, 봉인이 뜯어진 또 다른 박스에서는 투표용지의 3분의 1 가량이 서고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12일 수작업에 의한 재검표가 실시되자 개표 요원들은 "이런 귀찮고 고단한 일을 왜 해야 하느냐" 는 표정이었다. 이 와중에 한 개표 책임자가 "요즘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집에 가서 잠 좀 자고 와야겠다" 고 했을 때는 개표 관계자 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민주당 캠프의 더글러스 대니얼 변호사는 "볼루시아에서 선거가 어떻게 '실종' 됐는지에 대해 TV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 라며 "무법의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다" 고 개탄을 금지 못했다.
사실 볼루시아 카운티의 투ㆍ개표가 엉망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기나 타락선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 당국의 무신경, 낡은 장비, 개표요원의 무능력 등은 플로리다 내에서도 악명 높았다는 게 참관인들의 지적이다.
또 지적돼야 할 것은 다른 카운티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최근 ? 년동안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은 데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볼루시아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유권자수가 20만3,000명에서 26만 명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구성인구나 투표성향이 다양화졌으나 이에 걸 맞는 선거요원이나 자금은 확충하지 못했다. 스캐너로 투표용지를 읽어내는 최첨단 개표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만, 투표 당일 컴퓨터의 메모리 장애로 1만6,000장의 투표용지가 모니터상에서 사라진 게 한 예이다.
초미의 관심지역으로 떠오른 팜 비치 카운티 역시 갖가지 문제로 투표당일 오전부터 유권자들의 항의가 잇달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흑인들은 유권자 명부 뿐 아니라 규정에도 없는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고 투표를 거부당했으며,
문제의 나비투표용지에 대한 항의가 봇물처럼 터지자 이에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서가 공식 발송되기도 했다.투표를 지원하기 위한 핫라인을 38개 설치했지만, 안내요원은 34명만 배치됐다.
소득수준은 미국내에서도 최상층이지만 지역별로 슬럼가가 형성되고 흑인들의 참정권이 공공연히 침해되는 등 혼란스런 팽창을 겪은 것이 이번 투ㆍ개표 과정을 통해 노출됐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마이애미_데이드, 브로워드 등 수작업 재검표가 실시되는 나머지 카운티도 상대적으로 높은 소수인종과 노년층에서 비롯된 낙후된 정치불감증이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이들은 분석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