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가 신용을 지킨 현대 초창기의 한 공사(工事) 이야기는 '현대'라는 기업에 커다란 획을 그어준 사건이다. 바로 고령교(高靈橋) 공사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하던 1953년 4월에 수주한 낙동강의 고령교 공사는 그 때까지의 정부발주공사로는 최대의 규모였다.창업주는 심혈을 기울여 공사에 주력했다. 그러나 공사는 시련을 예고라도 하듯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대형공사의 경험이 없었던 데다 건설장비와 기술이 부족하여 1년이 지나도록 교각 한 개도 제대로 박아넣지 못했다. 그동안 물가가 120배 가량 상승했다. 자재비 노임 등이 덩달아 올랐다.
회사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노임은 밀리고 사무실은 빚쟁이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신용이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창업주는 몸을 팔아서라도 고령교 공사를 마무리짓겠다는 각오를 했다. 자동차수리공장 자리를 내놓고 동생들 집을 처분하여 모든 돈 1억환을 고령교 공사에 투입했다.
공사는 당초일정보다 두 달 늦게 끝났다. 6,500여만환의 엄청난 적자를 봤다. 적자규모가 공사계약금(5,478만환)보다도 많았다. 창업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신용을 지켰다. 현대는 그후 정부발주공사를 쉽게 수주할 수 있었고 그 힘은 오늘의 현대그룹이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50년사' 가운데 '쓰러지더라도 신용은 지켜라'는 항목을 간추려 봤다. 여기서의 창업주는 물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이다. 1997년 5월에 발간된 현대50년사는 고령교 공사 시절의 재정난을 최대의 위기로 기록하고 있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현대건설은 그 때보다도 더 어렵다. 현대건설 수뇌진은 고령교 시절의 위기관리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
고령교 공사 시절의 위기관리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신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스스로 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수리공장의 부지와 동생 집까지 처분했을 정도다. 정부당국이나 채권단이 닦달하지 않았는데도 돈될 만한 것은 모두 팔았다.
현대건설은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한국의 벡텔'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1992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판했다. 이 책 제목만큼 현대그룹의 경영궤적을 압축한 말도 없을 것이다.
현대건설은 지금 시련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가. '경제인 정주영'에게 있어 시련은 많았지만 결코 실패는 없었다. '경제인 정주영'은 한국 근대기업사에서 살아있는 신화이고 현대건설은 그의 분신이다.
현대건설이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씨 가문의 명예와 재산은 다음의 문제다. '경제인 정주영'의 신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대건설의 법정관리(부도)는 '경제인 정주영'의 사망과 같다.
현대는 자구책을 '또다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벌써 몇번째인가. 현대는 고령교 공사시절의 위기관리를 거울삼아 진실성있는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신용을 회복할 수 있다. 시장이 거부하는 한 정부도 채권단도 현대를 도와줄 수 없다.
이백만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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