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33)는 긴장하고 있었다. "인생과 연기 생활에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라고 생각돼 모든 일 정리하고 촬영만을 기다렸습니다."여자 주연을 위한 드라마가 범람하는 가운데 남자 주연을 위한, 그것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 정성희씨와 연출자 이승렬PD, 그리고 김혜수 박상원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기 때문일 것 같다.
차인표는 MBC가 29일부터 방송하는 수목 드라마 '황금시대' 에 출연한다. 1920~50년대를 배경으로 조선자본을 침탈하려는 친일세력에 맞서 마지막 남은 민족자본 은행을 지키는 은행가 역을 맡았다. "메시지가 강하고 스케일이 큰데다 남성적 선굵은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이 드라마가 좋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속에 의정부 야외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다 실내로 들어와 소주 한잔을 비우던 차인표에게 '황금시대' 가 그를 위한 드라마라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그는 "내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캐릭터나 연기 패턴을 감독님이 설정해 준대로 하겠다.
드라마에서 하찮게 보이는 소품이라도 중요한 의미가 있듯이 나 역시 하나의 소품으로 생각하고 연기를 하겠다" 고 말한다.
아직 그의 연기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기보다는 딱딱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극중에서 캐릭터에 완전히 천착하지 못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92년 데뷔한 이후 주로 트렌디 드라마는 출연해서 그럴 겁니다. 아들(정민?)과 집사람(탤런트 신애라)에게 자신있게 보여 줄 수 있도록 앞으로는 트렌디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깍은 듯이 깨끗한 외모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카리스마 때문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 '불꽃' 등에서 강렬한 면모를 과시한 그가 이번 드라마에선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성격의 인물을 소화해야한다. 이승렬PD가 차인표 편을 들고 나섰다. "차인표는 외모 때문에 건방져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한없이 부드럽고 의지력이 강하다."
차인표를 만나보면 실제 성격과 극중 캐릭터가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터뷰 장소에 김혜수가 나타나자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 간다.
그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그가 남을 배려하고 성실하다고 평한다. 정민이가 태어난 뒤 별도의 시간을 표시해 놓은 '아기 시계' 를 마련하고 부인과 교대로 분유를 먹였으며, 설거지와 요리도 잘 하는 가정적인 남자이기도하다.
"미국 유학시절 혼자서 요리 청소 등을 해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사를 같이 하게 됐지요."
최근의 한 만남도 차인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청담동 빌라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고물 줍는 아홉살 소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집사람과 제가 소녀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선물도 사줍니다. 앞으로 제가 만들려는 인터넷방송 드라마는 이 소녀 이야기입니다" 자신과 처지가 다른 소녀가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고 했다. 차인표의 연기 색깔이 드라마 '황금시대'의 성공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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